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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절대음감'을 가지고 태어난다

바람아님 2015. 10. 31. 21:20

(출처-조선일보 2015.10.31 신동흔 기자)

음악은 가장 원초적 소통 수단, 갓난 아기도 和音 좋아해
태어날 때부터 뇌에 새겨진 것… 뇌과학·고고학 등 동원 증명
'음악 근육' 뇌 활성화 시켜 창의적 연주 가능케 해

음악 본능 책 사진음악 본능 | 크리스토프 드뢰서 지음|전대호 옮김
해나무|488쪽|1만8000원

모차르트는 악동(惡童)이었다. 병든 아버지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 심사가 뒤틀리면 곡의 
맨 마지막 부분 화음(和音)을 의도적으로 빼먹어 아버지의 '귀'를 괴롭혔다. 
일곱 살부터 유럽 순회 연주를 다녔던 음악 신동(神童)이 화음 진행의 순서를 어기면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치게 했다. 혹독한 연습으로 키워진 천재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감행한 '작은 복수'였다.

음(音)에 대한 이런 예민한 감각은 모차르트나 그 아버지만 가졌을까.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의 과학 담당 편집자이자 아카펠라밴드 단원 겸 음악애호가인 
저자는 우리가 '음악 본능'을 갖고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갓난아기도 기본 3음계로 구성되어 안정적인 '으뜸 화음'(예를 들면 장조의 도미솔)이 연주에 종지부를 찍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깨지면 불안해 한다는 것. 현대 유럽인이든, 1000년 전의 아프리카인이든 머릿속에 화음이 '내장'돼 있다. 
우리는 화음이 없으면 불안감을 느낀다. 영화에서 무조(無調) 음악이 깔릴 때 우리는 악당이 모퉁이에서 나타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에 휩싸이지 않는가.

음악의 원형(原型)은 인류가 유인원에서 벗어나 의사소통 수단을 찾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25만년간 지구 상에 존재했던 네안데르탈인은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모방한, 음악과 언어가 분화(分化)되기 이전의 
무언가로 소통했다. 이는 말(言)은 아니지만 성조(聲調)와 길이 리듬을 가진 '소리'였다. 중국어·베트남어 등 성조를 가진 
언어에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네안데르탈인들은 '절대음감'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의사 전달을 위해 음의 높이와 길이를 정확하게 식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음악은 언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인간이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집단 구성원들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유대를 강화했다. 그림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춤추는 요정들과 함께 있는 오베론과 티타니아와 퍽’(1786).
음악은 언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인간이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집단 구성원들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유대를 강화했다. 
그림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춤추는 요정들과 함께 있는 오베론과 티타니아와 퍽’(1786). /해나무 제공
저자에 따르면 요즘 신생아들도 절대음감을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언어의 습득과 함께 이를 상실한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2008년 이탈리아 밀라노 대학에서 생후 3일 미만 신생아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뇌를 스캔한 결과, 이들도 18~19세기 
고전음악을 좋아했다. 반면, 클래식을 변형하거나 불협화음이 들어가면 싫어했다.

음악에 대한 반응은 뇌의 가장 깊숙한 영역이 간여한다. 2009년 독일 뮌헨 법원은 게리 무어의 1990년 히트곡 
'아직 우울해요(Still got the Blues)'가 독일의 무명 밴드 '유즈 갤러리'의 1974년 곡 노르트라흐를 표절했다고 판결했다. 
무어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1970년대 독일에 머물 때 해당 밴드의 콘서트에 갔을 가능성이 제기돼 패소했다.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들어와 있던 소절이 거의 20년 뒤 곡에 포함된 것이었다.

무어가 이를 인식 못 한 것은 인간이 뜻대로 조절할 수 없는 '뇌간(腦幹)'이 간여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우리 뇌에서 눈앞에 뭔가 나타날 때 순간적으로 눈꺼풀을 감는 등 위험 회피 행동을 관장하는 영역이다. 
클래식이든 가요든 짧디짧은 음악 몇 마디에 잊고 있던 옛 연인과의 추억, 과자 굽는 향기 같은 것이 마법처럼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은 우리가 왜 음악에 빠져드는지 첨단 뇌과학과 고고학, 수학, 생리학 등의 최신 성과물을 동원해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뇌의 '음악 근육'을 기를 것을 권유한다. 
피아노를 연습하면 음을 떠올리는 행동과 해당 음을 짚는 손가락의 연결이 자동화되어 뇌의 활동성도 높아진다. 
누구나 한때 절대음감을 가졌던 만큼 음치라고 움츠러들 필요도 없다.

첨단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야말로 '예술'의 영역이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은 "음들 사이의 여백, 거기에 예술이 깃든다"고  했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피아노까지 연주하지만,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의 힘을 조절해 음량을 변화시키고, 4분의 3박자에서 
두 번째 4분 음표는 항상 더 길게 연주하는 등 패턴을 만들어내진 못한다.

책 곳곳에 삽입된 QR코드에 스마트폰을 대면 저자의 설명에 등장하는 연주를 들어볼 수도 있다. 
원제는 '음악유혹자'(Der Musikverfüh r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