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해 교육에서는 콩 심은 데 반드시 콩이 나는 게 아니고, 팥 심은 데 꼭 팥이 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한 배에서 난 형제간에도 A를 가르치면 하나는 A′정도로는 배우는데 다른 하나는 B나 C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단순한 인지 능력의 차이로는 만족스러운 설명이 안 된다.
가르친 그대로를 답습하지 않는 게 꼭 나쁜 것도 아니다. 훈장이 ‘바담 풍’이라고 해도 학동들은 ‘바람 풍’으로 익힌다. 훈장의 혀 짧은 소리에 대한 과거 경험이 학습 내용을 보정한다. 노승이 아무리 손끝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 해도 동자승은 손끝을 보게 돼 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수준·맥락·내면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에 한국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민주주의를 다소 유보할 수 있다는 ‘한국적 민주주의’와 10월 유신의 필요성을 외우고 또 외우고 시험 문제까지 열심히 푼 세대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축이 된 것도 블랙박스 이론의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다. 그 역도 성립한다. 요즘 여러 열혈지사들이 걱정하는 이른바 ‘좌편향’ 교과서를 보고 자란 세대가 집단적으로 좌로 기울었다는 증거가 없다. 오히려 10, 20대 청년들의 우파적 활동이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다. 20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국가의 역사 해석 독점 같은 원론적인 쟁점을 옆으로 살짝 비껴놓고 교육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보면 학생들이 올바르지 않은 교과서로 공부하게 될지 모른다는 게 핵심 이유다. 그런데 학생들은 교과서 글귀대로 새겨지는 ‘백지’가 아니다. 지난 반세기 한국의 교육사가 이를 입증하지 않았나. 어쩌면 학생들이 역사 서술에 대한 비판적·창조적 사고력을 기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국정화’ 소리만 나와도 혈압 상승을 느끼는 그대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다.
이상언 사회부분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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