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1.25 선우정 논설위원)
日帝와 左派가 발굴한 부끄러운 史料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들을 걷어내지 못하면 자랑스러운 歷史는 공염불로 끝날 것이다
얼마 전 도쿄 서점에서 '조선왕공족(朝鮮王公族)'이란 책에 눈길이 갔다.
책을 감싼 띠지에 '제국 일본을 향한 일그러진 충성'이란 글자와 함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일본 군복을 입고 일본 왕족의 끝자락에 선 조선 왕족 세 명의 모습이다.
고종의 아들 영친왕과 고종의 손자 이건·이우가 야스쿠니신사에서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라고 했다.
책은 일제 강점기 이후 조선 왕족 26명의 인생유전을 다룬 내용이었다. 그저 그런 혐한(嫌韓) 서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몇 장 읽다가 많은 사료(史料)에 기초한 치밀한 책이라는 걸 알았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전날 도쿄 아카사카의 프린스호텔 재건축 현장을 둘러본 일도 책을 붙들게 했다. 2005년 이곳 싱글룸에서 영친왕의 외아들
이구가 숨진 채 발견됐다. 나라가 독립을 유지했다면 황제에 올랐을 그였다. 특파원 당시 그의 쓸쓸한 최후를 취재하면서
그가 숨진 프린스호텔이 옛날 일왕이 준 아버지 영친왕의 도쿄 저택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왕손 이구는 태어난 곳에서 숨졌다. 몇 년 후 호텔을 부수고 재건축을 한다기에 저택 건물도 사라지는가 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인근에 문화재로 보존돼 있었다. 거액을 들여 5000t짜리 건물을 통째로 옮겼다고 한다.
책은 영친왕의 저택처럼 우리가 잊고 싶은 일을 떠올리게 했다.
망국(亡國) 이후 순종의 전속 요리사로 일본 데코쿠(帝國)호텔 초대 조리장이 부임했다는 것,
순종은 그가 만든 프랑스 요리와 일본이 보내준 우량 젖소의 신선한 우유를 즐겼다는 것 등등. 황태자 영친왕은 취미인
난초 재배가 전문가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 전쟁통에도 일본 경승지에서 등산과 스키를 즐겼다는 것,
이토 히로부미가 살던 별장을 받은 대가로 이토 유족에게 거금 12만엔을 줬다는 것 등등.
책을 읽으면서 일본의 치밀함에 놀랐다. 식민시대 조선 왕족의 전체상을 담은 왕공족록(王公族錄), 고종의 기록을 따로 담은
이태왕실록은 물론 고종의 친형 행적을 기록한 이희공실록, 조카의 행적을 기록한 이준공실록까지 편찬했다고 한다.
왕족도 태평하게 사니 백성도 저항하지 말고 순응하라는 의도였을까. 사료 가운데에는 일본이 왜곡하거나 조작한
기술(記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왜곡과 조작을 입증하지 않으면 그들의 기록은 결국 역사로 굳는다.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이 가장 아팠다. 조선이 망한 뒤였지만 일본은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8년에 걸쳐 제작했다.
조선의 현재는 물론 과거까지 일본 제국사의 일부로 만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편찬을 지휘한 사람도 일본 학자였다.
해방 후 우리는 두 실록을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이 쓴 역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스스로 실록을 만들지 않느냐'고. 일본이 한 것을 줄기차게 부정하면서
해방 후 새로운 사료를 발굴해 정통성 있는 실록을 만들지 않은 한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1960년대 국사편찬위원회가 미진하나마 고종시대사(史)를 편찬했으니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군주국가도 아닌데
지나간 왕조의 실록 편찬이 법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조선왕조실록의 공백을 메워주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히 한국의 역사는 자랑스럽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를 쓰기 위해선 먼저 자랑스러운 사료를 발굴해야 한다. 현대사도 마찬가지다.
고(故) 김영삼 대통령 재임 당시 시작된 '역사 바로 세우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 현대사 전방위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고 지금 정부처럼 역사를 재해석하겠다고 덤벼든 게 아니다. 먼저 사료 발굴에 자원을 투입했다.
노무현 정부 때 활동을 시작한 진실·화해위원회의 경우 투입된 인력은 230여명, 예산은 759억원에 달했다.
이들이 정리한 자료를 보면 해방 이후 한국은 암흑의 나라다. 물론 부끄러운 역사도 한국사의 일부다.
사료 발굴을 통해 억울함을 푼 국민도 많다. 하지만 왜곡된 부분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그토록 분개하는 교과서의 좌편향 주장은 많은 부분 그런 사료에 기초한다.
일제 사료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국 근대사를 자랑스럽게 그릴 수 없듯 좌편향 사료를 극복하지 못하고 현대사를
자랑스럽게 쓸 수 없다. 애써 쓴다고 해도 권력 시한(時限)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학자들이 '자랑스러운 사료'를 발굴하도록 지금까지 어떤 지원을 했고 어떤 성과를 얻었나.
일제와 지난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부끄러운 사료를 얼마나 걷어냈나.
역사는 재해석만으로 새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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