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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사과를 받는 법

바람아님 2016. 1. 4. 08:01

(출처-조선일보 2016.01.04 정시행 정치부 기자)


대학생이던 1999년 한·일 학생 교류로 도쿄에 가서 역사 문제를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일본 학생들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기로 '21세기 파트너십'을 주제로 삼자고 했고, 
우리는 군 위안부 문제를 내밀었다. 토론은 지리멸렬했다. 
그들은 "우린 책임 인정도, 보상도 다 했다"고 했다. 감정이 격해졌다. 
"너희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봐. 그걸로 됐다고 여길지." 
갑자기 일본 여학생 한 명이 찬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빌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분이 풀리겠니?"

12월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 가운데 
윤병세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가진 후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성형주 기자
그때 느낀 당혹감은 그녀가 상대의 말문을 막기 위해 돌출 행동을 해서만은 아니었다. 
우리도 억지 사과 따위 받아줄 마음이 애당초 없었다. 
실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이들이 사과를 할 준비도 받을 준비도 없이 마주앉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이번 한·일 위안부 협상은 '정부로선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한다. 
굴욕 협상이니 외교 참사니 하지만 이 점은 인정해야 한다. 
인권(人權)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협상은 교통사고 때 보험 산정인들이 나서 양쪽의 책임 비율과 수리비를 따질 때나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위안부 생존자가 해마다 줄고 있는 점을 감안해 협상이란 것에 나섰다. 
더구나 상대는 아베의 자민당 정권이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 12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목도리와 털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은 사과했지만 무엇에 대해 왜 했는지 모른다. 
아베 총리 이후 세대는 자신들도 전쟁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다만 국제 여론과 한·미·일 안보·경제 동맹을 고려해 일본의 '보통 국가화'란 
숙원을 향해 그들 역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협상 의제로 받아들였다. 
이전 정부에서 했던 수준의 사과를 반복하고 10억엔을 내기로 한 건 미래의 
이익을 위한 괜찮은 투자로 여길 것이다. 
일본이 과거에 발목 잡힐 수 있는 '법적 책임'과 '배상'이란 용어를 필사적으로 
피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국내에서 욕을 안 먹는 방법은 
협상을 결렬시키는 것뿐이었다.

국가 차원의 사과란 역사상 드물었다. 있다면 도덕과 정의로 포장된 힘의 
논리와 국제 질서에 굴복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사과의 성립 여부는 오히려 
사과를 받는 쪽의 의지와 전략에 달린 경우가 많다. 북한은 2010년 천안함 
폭침을 비롯해 우리의 인명을 살상한 숱한 도발을 일으켰지만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지난해 지뢰 도발 때처럼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유감을 표한다" 정도의 
말만 나와도 한국 사회 한쪽에선 이를 사과로 봐주자며 정부의 협량을 탓했다. 
정부가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려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 '사실상 사과'를 
이 악물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이번 위안부 협상은 진정한 사과를 할 마음이 없는 상대와 줄다리기한 결과로 어차피 완승은 불가능했다. 
그런 사과나마 받아들이고 향후 한·일 관계를 어떻게 국익에 맞게 끌어갈지는 우리가 결단할 문제다. 
무엇보다 위안부 기록, 추모관 건립 등 가능한 방안을 빨리 실행에 옮겨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를 되찾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