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환하게 빛나는 봄 바다를 쓸쓸한 얼굴이 되어 바라보던 사십 대의 그를 꼰대 같다고 생각하며 내겐 추호도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자만하기까지 했는데, 마흔을 훌쩍 넘기고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나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살다 보면 불쑥불쑥 다시 찾아오는 말들이, 풍경들이, 노래들이 있다. “너도 너 같은 딸 낳아서 나처럼 속을 썩어봐야 알지”라던 엄마의 잔소리가 그렇고, 봄만 되면 듣고 싶어지는 백설희 선생의 ‘봄날은 간다’가 그렇고, 돈 벌러 직장에 다니는 엄마 때문에 텅 빈 집을 혼자 지키다 쓸쓸히 잠든 어린 아들의 모습이 그렇다. 봄만 되면 피어오르는 저 하얀 목련처럼, 밤만 되면 고개 드는 이 깊은 죄책감처럼.
![](http://t1.daumcdn.net/news/201603/27/kukminilbo/20160327173404892xzdz.jpg)
다음 주부터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하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안 해본 일이라 당분간 정신 바짝 차리고 적응하기 위해 바쁘고 피곤한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추호도 꼰대가 될 생각은 없으나, 꼰대처럼 말해 보면 살아 보니 또 어떻게든 살아질 거란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꽃상여에 실려 성황당 길을 돌아가던 내 할아버지의 상여처럼 봄날은 가고 있을 것이다. 크게 잘 살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잘못 살지도 않았다. 어떤 영화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라도 늙었으니 더 이상 크게 삶을 망칠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어느 누구를 만나도 더 이상 설렘이 없고, 어떤 부당함을 당해도 싸워봤자 피곤할 뿐 억울하면 출세했어야지 하며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바로 포기해버리는 나를 긍정하는 건 아니지만 부정하지도 않은 채 생방송인 삶을 재방송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자문해보는 봄이다.
안현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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