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김춘식 기자의 사진으로 보는 삶] 어머니의 부엌

바람아님 2016. 8. 2. 00:19
[J플러스] 입력 2016.07.31 15:57
 

며칠 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부엌 살림 일부를 새것으로 교체했습니다. 신혼 초 적지 않은 돈을 투입해 장만한 것인 데다  아직도 그럭저럭 쓸 만해 보이고, 게다가 손때 묻은 것들이 항용 그렇듯 잔정이 덕지덕지 붙은 묵은 것들을 배신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읍니다만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는 당사자가 바꾸자는데 굳이 토를 달기도 그렇고 해서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옛것이 나가고 새것이 들어오던 날, 아내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교체한 부엌 살림 일부에 묻어 있을, 이제는 돌아가시고 없는 어머니의 손때가 영영 사라지는 것 같아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 게, 사람마다 얼굴이 다른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누구는 신 김치를 잘먹고 누구는 겉절이 같은 방금 담근 새 김치를 좋아합니다. 지금이야 냉장고에 김치냉장고까지 가세해 1년 내내 언제든지 신선한 김치를 먹을 수 있습니다만 냉장고가 없던 시절, 푹푹 찌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김치는 순식간에 익어버려 먹기 곤란한 상태가 됩니다.


아버지도 그렇고 아버지 닮은 제 형제들도 그렇고 모두 신 김치를 잘 먹지 못했습니다. 모두 살기 어려워 김치 말고는 뭐 하나 제대로 먹을 게 없었던 시절이라 어머니는 2~3일에 한 번씩 새 김치를 담가 밥상에 올려 놓으셨습니다. 새 김치를 좋아해 김치를 자주 담그게 됐는지, 김치를 자주 담가 새 김치를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제 김치를 담가주시던 분도, 동그란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김치를 먹던 분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아직 제 입맛만 여기 남아 여전히 새김치를 그리워합니다.

냉장고를 볼 때마다 먹다 남은 반찬들을 넣어두던 찬장이 생각납니다. 스위치를 돌리는 즉시 파란 불꽃이 올라오는 가스레인지를 보며 어머니가 새벽에 자다 말고 일어나 갈던 연탄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따끔 아내가 김치를 담가 김치냉장고에 넣는 것을 보면 조금이라도 김치익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물 채워 둔 대야에 담가 두던 김치항아리가 생각납니다.

옛사람이 가신 자리에 새사람이 들어오고,옛 생각이 나간 자리에 새로운 생각이 들어오며, 옛 살림이 나간 자리에 새 살림이 들어와도, 입 속에 남은 입맛만은 변하지 않고 살아 남아 떠나신 분,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더울수록 그리움이 깊어집니다.

 

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nsi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