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여 년 동안 이성에 반하는 야만적 행태가 나타났다. 미국의 트럼프나 프랑스의 르펜은 보편주의를 거스른다. 이들을 보면 이성에 회의가 들 법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이성은 진화한다고 볼 수 있다. 위험한 현상에 이성이 개입해 바꿀 필요가 있다."
비토리오 회슬레(56) 미국 노터데임대 교수는 탈근대 철학에 의해 전복된 객관적 관념론을 복권시키려는 철학자다. 이성이나 진리의 절대성을 부정하며 위험하다고까지 말하는 탈근대 사유에 맞서, 이성을 통한 객관적 진리와 실천이 21세기에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20대 때부터 해석학의 대가인 한스 가다머 등 선배 철학자들의 극찬 속에 독일 관념론의 계보를 이어갈 '천재 철학자'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 26일 세계미학자대회가 열린 서울대에서 회슬레 교수를 만났다. 그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1995년 학술대회 참석차 서울에 왔다가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다. 이번이 다섯 번째 방문이라고 한다. 헤겔 철학을 전공한 권대중 계명대 철학과 교수와 나눈 대담을 정리했다.
-- (권대중) 20세기 말 세계 사상·문화계는 넓은 의미의 반이성주의 내지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했다. 나는 오히려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으로서의 21세기형 이성주의를 모색하는 편이라 교단에서 이성의 거역 불가능한 가치를 강조해왔다. 5∼6년 전에는 소속 학과 학생들이 '우리의 이성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라는 문구를 독일어로 학과 티셔츠에 새기기도 했다. 철학적 적대자들은 이를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인간이 이성 내지 합리성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뭔가.
▲ (회슬레) 이성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능력이 이성이다. 이성이 없다면 정념이나 욕구를 평정할 수 없다. 상호간 몰이해나 공격적 성향을 통제할 수 있는 건 결국 이성이다. 이성이 없으면 우리는 야만적·폭력적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이성이 폭력적이라고 비판하기 위해서도 이성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겉으로 이성에 반대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이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의 인식에도 이성은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실천적 측면에서 보면 나의 이성을 통한 행위가 어떤 형태로 바뀔지 스스로 인식하고 제어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성의 능력이다.
--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반(反)이성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근거 중 하나는 본질적으로든 역사적 실현과정에 있어서든 이성이 독단이나 폭력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성주의를 수호하려면 이성이 폭력과 무관하다는 논증이 매우 필요해보이는데.
▲ 두 가지 국면이 있다. 첫째는 실제로 이성이 폭력과 연관된 상황을 볼 수 있다. 이성은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 그것은 대상을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일단 이성은 폭력과 연관돼 있고 우리가 폭력에 쉽게 이끌릴 수도 있다. 둘째는 이성적 주체가 다른 이성적 주체를 존중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깨질 경우 대의를 위해 폭력을 사용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를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막은 것처럼 일종의 필요악으로서 폭력은 인정해야 한다.
-- 이성적 사유를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자본주의는 이성과 관계없이 자체 논리로 작동하는 것 아닌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역시 이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 우리 몸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더욱 강해지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성에 맞서는 행태들이 궁극적으로 이성을 강하게 키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많은 정치가들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자본주의가 공동체를 위한 대의보다는 개인들의 사적 욕구에 의해 작동한다는 점은 간과한다.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과 달리 독일은 거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개인을 보호하고 있다. 비이성적 인간이 없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이성이 있기 때문에 왜 그런 비이성적 행태가 발생하는지 알아야 한다. 테러를 일으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깊은 내면에는 자신이 무시당하고 조롱받는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 원한감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돌발행동을 막을 수 없다.
-- 당신은 스스로 '객관적 관념론자'라고 칭하지만 어떤 유형의 관념론도 현재 주류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관념론 전통이 예전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나. 아니면 앞으로 어떤 사유 방식이 세계 지성계를 주도할 것으로 생각하나.
▲ 객관적 관념론 같은 이성주의가 다시 주도할 것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세계 정세가 너무 비이성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객관적·절대적 가치가 지배하지 못하는 세계를 아프게 경험하고 있다. 인간을 절멸시킬 만큼의 경험이다. 그것을 통해서 다시금 보편적 가치를 인식하지 않을까.
-- 당신은 한국을 꽤 긍정적으로 보고 미래에 대해서도 상당히 기대한다. 하지만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단어가 통용될 정도로 실망과 분노가 크다. 객관적 시선과 남다른 애정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 개발도상국 중 한국만큼 도약한 나라는 없다. 물론 고통이 많았지만 상당히 무난하게 안정적 민주주의에 진입했다. 세계사에서 거의 유일한 경우였다. 청년들이 마음 속에 두고 있는 불안이나 만연한 권력형 부패는 잘 알고 있고 걱정스럽다. 그러나 비슷한 출발선에 섰던 나라들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
-- 현대예술을 보면 헤겔이 예언한 '예술의 종언'이 실현된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이번 세계미학자대회의 주제인 대중예술의 경우 예술과 진리와 더이상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진리에서 해방된 예술은 어떤 가치를 추구할 수 있을까.
▲ 인간 내면의 심오한 관심사와 연결돼야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특히 대중예술은 진정한 예술과 거리가 멀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은 철학적 맥락에서 예술이라고 부르기 힘들다. 상품성을 쫓는 예술들이 판치는 건 병리적 현상이다. 과거 단테나 호메로스의 작품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달성했다. 지금은 그런 사례를 발견하기가 점점 어렵다.
-- 당신은 철학의 거시적 영역과 미시적 영역 모두에 관심이 많을뿐 아니라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는 저술가로 알려져 있다. 요즘은 어떤 주제를 연구하고 있나.
▲ 프랑스의 영화이론가이자 감독인 에릭 로메르의 미학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근대 에로티시즘의 대가다. 또 포스트모더니즘의 텍스트 해석학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연구하고 있다. 텍스트를 누가 어떻게 해석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석학은 문제가 있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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