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09.28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고 표현한 사람은 영국 작가인 이스라엘 쟁윌(Israel Zangwill·1864~1926)이다. 1908년에 초연된 그의 극작품 〈용광로〉는 1903년에 있었던 러시아의 유대인 학살 사건에서 어머니와 누이를 잃은 데이비드 키사노라는 주인공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러시아계 기독교도인 베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하필 그녀의 아버지가 그의 가족을 몰살시킨 학살의 책임자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베라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베라와 행복한 삶을 꾸려간다. 마치 용광로에서 쇠가 녹아 강철이 만들어지듯이 미국이 모든 인종을 융해시켜 '미국인'이라는 하나의 민족을 만들 것을 기대하면서, 주인공은 이렇게 선언한다. "미국은 신의 위대한 용광로입니다. 여기에서 유럽의 모든 인종들은 녹아서 새롭게 주조됩니다. 신은 독일인·프랑스인·아일랜드인·영국인·유대인과 러시아인을 용광로에서 녹여 미국인을 만들고 계십니다." 이 연극을 관람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 작품은 정말로 위대한 작품이오!" 하며 환호했다고 한다.
쟁윌의 순진한 희망대로 미국은 정말로 인종 차별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접받는 사회가 되었을까? 그의 작품이 나오고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실질적인 인종 간 차별이 존재한다. 예컨대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도 흑인은 백인보다 사형 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4배나 높다.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라 하더라도 의사는 흑인보다 백인에게 더 다양하고 좋은 처방을 해주려고 하며, 흑인의 평균 수명은 백인보다 6년이나 짧다. 유색인종 대통령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미국은 인종이 용해되는 용광로와는 거리가 멀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 할 때가 아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많은 이주자가 들어오고, 외국인 며느리가 흔한 이야기가 되었으며, 대학교에서는 외국인 학생이 없으면 실험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외국과의 접촉이나 교류가 많지 않아서인지 우리는 아직도 이들에게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용광로가 될지 비빔밥이 될지 모르겠으나, 우리도 외국인 이주자들을 맞아들여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25] 경제성과 생태성 (0) | 2013.08.10 |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27] 인류의 조상 (0) | 2013.08.10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9] 바다의 날 (0) | 2013.08.03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25] 풍차 (0) | 2013.08.03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8] 삶과 죽음 (0) | 2013.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