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1.09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해물파전을 단칼에 두 조각 내 좋아하는 해물만 獨食은 불가능
도마 위 파전 나누기도 어려운데 多차원의 특징과 성향 가진 사람을
블랙리스트 만들어 줄 세우고 이를 근거로 차별하는 일 없어야
상상의 해물파전을 부쳐보자. 동그란 모양이 아니라 네모꼴로.
독자는 어떠신지. 난 파보다 해물이 훨씬 더 좋다.
내가 부친 해물파전을 보니 아래 절반의 양쪽 두 구석 부근에 해물이 몰려 있고, 위의 두 구석에는
파가 몰려 있다.
친구 몰래 해물파전을 칼로 싹둑 한 번에 잘라, 해물이 많은 쪽은 내가,
파가 많은 쪽은 친구가 먹게 하려면 어떻게 자를까. 쉬운 문제다.
칼을 옆으로 해서 수평으로 둘로 가르면 된다. 나는 아래쪽, 친구는 위쪽.
두 번째 부친 상상의 해물파전.
이번에는 해물이 많은 쪽이 왼쪽의 두 꼭짓점에, 파가 많은 쪽은 오른쪽 두 꼭짓점에 몰려 있다. 이번에도 문제없다.
칼을 세워 왼쪽, 오른쪽으로 가르면 된다. 나는 왼쪽, 친구는 오른쪽.
세 번째 부친 상상의 해물파전은 좀 달라 보인다.
해물은 왼쪽 아래와 오른쪽 위의 두 구석 주변에 몰려 있고, 파는 다른 대각선 방향으로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에 몰려 있다.
자, 이번에는 어떻게 칼을 놀려 해물이 많은 쪽을 내가 독차지할까. 머릿속에서 상상해 보시길.
이번에는 어떻게 잘라도 나 혼자 해물을 독식할 수 없다.
사실, 해물파전일 필요도 없다.
네 개의 꼭짓점에 파란색과 빨간색을 각각 칠해놓고
어떻게 네모를 자르면 같은 색의 꼭짓점들만 모아서 얻게 될까와 같은 간단한 수학 문제다.
만약 두 개의 빨간색 꼭짓점이 대각선을 따라 마주 보고 있고,
파란색 꼭짓점도 마찬가지로 다른 대각선을 따라 서로 마주 보고 있다면,
딱 하나의 직선으로 빨간색이 있는 부분과 파란색이 있는 부분으로 사각형을 둘로 자를 수 없다. 믿어지는지.
단칼에 사각형 둘로 자르기 문제가 바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수십 년간 학자들을 괴롭혔던 XOR(배타적 논리합)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입력과 출력의 딱 두 개 층으로 구성된 연결망에서 선형 연산으로 XOR이라는 논리를 구현할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중간에 숨은 층을 살짝 넣어 연결망을 구성하고 역전파의 방법으로 학습시키면 해결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알파고가 그 결과다.
아무 기준이나 하나를 택해 사람들을 한 줄로 늘어놓자.
몸무게를 기준으로 하면 무거운 사람과 가벼운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키를 기준으로 하면 키가 큰 사람, 키가 작은 사람의 둘로 나눌 수 있다.
이 둘을 모아, 키와 몸무게를 함께 생각하면 어떨까.
키 크고 무거운 사람, 키 작고 가벼운 사람뿐 아니라 키 크고 가벼운 사람, 키 작고 무거운 사람도 있다.
키와 몸무게만 생각해도 결코 사람들을 딱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없다.
바로 위의 해물파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는 더 어렵다.
사람은 키와 몸무게뿐 아니라 얼마든지 다른 속성도 가진다.
종교가 있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등 수없이 많은 속성을 가진다.
A정당의 통화 정책을 지지하지만 과세 정책은 B정당을 선호하고, 외교정책은 다시 A정당을,
대북정책은 B정당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 우리 사람이다.
이차원 도마 위에 놓인 해물파전도 단칼에 둘로 나눌 수 없다.
사람이 가진 온갖 다양한 속성을 생각하면 이차원, 삼차원 정도가 아니고, 끈 이론의 십일 차원도 아닌,
거의 무한대의 높은 차원이 필요하다.
사람을 일렬로 세워놓고 왼쪽과 오른쪽,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예쁜 사람, 못생긴 사람,
우리 편, 저쪽 편 등으로 나누려는 모든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블랙리스트든 화이트리스트든 다 마찬가지다. 학생들 성적도 똑같다.
사람은 순서를 정해 한 줄의 리스트에 적힐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이 말도 안 되는 리스트가 차별의 근거로 이용된다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人文,社會科學 > 科學과 未來,環境'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물리학 통념 깼다"..UNIST '빛 생성' 새 매커니즘 규명 (0) | 2017.01.12 |
---|---|
[사이언스 포럼] 한국의 마지막 기회 (0) | 2017.01.11 |
[뉴스인사이드] 극소형 위성·블록체인.. 지구촌 기술혁명 포문 연다 (0) | 2017.01.08 |
세계 바둑 고수 줄줄이 꺾은 기사… 알고 보니 '알파고'였네! (0) | 2017.01.08 |
[최형섭의 세상을 상상하는 과학] 서양 과학은 왜 그렇게 朝鮮에 야박했나 (0) | 2017.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