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우연히 리처드 기어를 봤다. 아침 7시, 트라이베카의 어느 골목에서 그가 차에 시동을 걸고 떠났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본 건 아니고, 내 동행이 본 것이지만. 그 말인즉슨, 나 역시 고개를 45도쯤 옆으로 돌리면 볼 수 있었다는 거고, 따라서 여러 생략과 비약을 거친 후 내 머릿속에는 이미 내가 리처드 기어와 눈이 마주친 것으로 정리된, 그 한 장면만 남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내게 리처드 기어란 무색무취의 존재였다. 그런데 그 아침 7시 이후로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동행이 본 사람이 리처드 기어가 확실한지 궁금해서, 턱수염 여부부터 머리스타일까지 최근 모습들을 찾아보았다.
자체 감정 결과 리처드 기어를 본 것으로 결론이 났고, 다음으로 리처드 기어의 일상적인 동선이 궁금해졌다. 그가 뉴욕에 집을 구입했다는 기사, 덩달아 분장 상태의 리처드 기어를 진짜 노숙인인 줄 알고 배려했던 여행자 얘기도 보게 되었다.
단지 아침 7시의 그가 정말 리처드 기어였는지를 확인하려 했을 뿐인데, 그것이 확인된 후에도 나는 한동안 리처드 기어의 이름을 검색창에 집어넣었다. 그 과정은 아침마다 리처드 기어를 구독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익숙한 소식은 재확인했고, 뭐 새로운 소식이 없나 기다렸으며, ‘귀여운 여인’이라든지 ‘뉴욕의 가을’ 같은 옛 영화를 다시 보기까지 했다. 관심을 기울인 만큼 그가 좋아졌던 것이다.
이렇게 리처드 기어를 한 계절 구독한 후, 동네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임춘애를 두 번 봤다. “어? 임춘애다!” 먼저 말한 건 역시 내 동행이었지만, 이번에는 나도 봤다. 처음엔 우리 동네에 그분이 사는지가 궁금해서 이것저것 검색해보기 시작했고, 옛 기사들을 읽으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임춘애를 봤을 때, 그분은 심지어 뛰고 계셨다. 하나의 강력한 인상을 만들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다. 임춘애씨, 동네 주민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人文,社會科學 > 日常 ·健康'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미 라샤드의 비정상의 눈] 소중한 이웃과 함께하는 새해 (0) | 2017.01.12 |
---|---|
뒤꿈치 들기·다리 올리기… 하체 근력·균형 감각 길러줘 (0) | 2017.01.11 |
[일사일언] 동남아 공무원의 방한복 (0) | 2017.01.06 |
의사들은 절대 안먹는 이 음식..당신은? (0) | 2017.01.05 |
[시선 2035]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0) | 2017.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