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의 수강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대부분 “요새 일이 편한가 보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고 싶은 걸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대견해하는 선배도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심지어 동기와 친구까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나도 안다. 이들도 우스갯소리로 건넨 말이다. 하지만 가치관은 원래 공론의 장에서 한 발언보다 말랑한 일상 속 농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사(公私)의 명확한 구분과 여유에 대한 반감을 스스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분한 키팅 선생은 시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의학·법률·경제·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이다.” 우리는 어떤가.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채 하루를 견뎌 내고 있지 않을까. 이력서 ‘취미란’에 쓸 게 없다는 어른들의 숱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일·가정 양립이 안 되면 출산율이 낮아진다는데, 일·자아 양립이 안 되는 우리는 무엇을 낮추고 있을까.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17년에 주목해야 할 키워드 중 하나로 ‘욜로(YOLO)’를 꼽았다. ‘너는 인생을 단 한 번만 산다(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이 말은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쯤 된다. 지난해 유난히 유행했던 사축(社畜·회사의 가축)·직장살이·쉼포족 등 자조 섞인 신조어에 대한 답인 것 같아 반갑다.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다만 ‘나’부터 바뀌지 않으면 결국 바뀌지 않는다. 새해를 맞아 일상에 변화를 줘 보면 어떨까. 노래방 아닌 현실에서 ‘브라보 마이라이프’를 불러 보는 거다. 나는 1월부터 아내의 허락하에 주말 기타 강습을 받기로 했다. 숨은 여유를 찾아 뭔가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1월이다.
노진호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