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잘사는 이유. 민족성인가, 리더십인가? - 김춘식 기자의 사진으로 보는 삶

바람아님 2017. 1. 25. 23:26

[J플러스]  2017.01.25 00:05



왜 어떤 민족은 잘살고 어떤 민족은 가난하게 살까.한때 잘살았던 민족이 가난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민족이 주변의 예상을 깨고 잘살게 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덩샤오핑 이후 최고의 절대 권력자 반열에 오른 시진핑은 한국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한령을 발동해 노골적으로 한류와 한국산 제품 등에 대해 불이익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사회를 국수주의 쪽으로 돌려 세우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아베는 전쟁을 금지하고 있는 평화헌법의 개정을 노리며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에서 함께 피를 흘렸던 동맹국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의 이익 우선이라는 기치아래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상태로 돌진해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에게 한국은 여전히 관심 밖의 나라로 보인다. 뭉친지 오래면 헤어지고, 흩어졌다가 시간이 흐르면 뭉치는 게 세상 이치다. 바야흐로 동맹의 시대가 저물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말이 좋아 각자도생이지 힘센 놈은 살고 약한 놈은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 상황이 어딘가 눈에 익다. 100여 년 전 망해가는 조선을 가지고 놀던 제국주의 세력의 아귀다툼 속에서 결국 속수무책으로 나라를 잃은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은데 이 와중에 앞장서서 길을 제시하고 민족의 단결을 촉구할 리더십마저 실종돼 있는 상태라 기분은 더욱 우울하기만 하다.
 

트럼프 미 신임대통령이 취인임식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연설하고 있다.AP=뉴시스


 
 신년 초 청와대에서 기습적으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구사한 언어는 사실여부를 떠나 대통령의 언어, 리더의 언어, 시대의 언어가 아니었다. 말이 인격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상대방의 인격을 평가한다. 달변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의전이 배제된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원고없이 들려준 말의 민낯은 우리가 사람을 몰랐어도 너무 몰랐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은 박근혜를 과대평가했고 박근혜는 대한민국을 과소평가했다.
 
 각각의 시대는 나름의 시대적 대의를 갖는다. 공간적으로 내재적 접근이 가능하다면 시간적 차원에서의 내재적 접근 역시 안 된다는 법이 없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후진적 농업사회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남한 사회는 전통적 농업생산 만으로는 도저히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아래 산업화의 여정에 돌입한다. 박정희의 리더십은 다해봐야 한 줌도 안 되는 궁핍한 국가 에너지를  모조리 끌어 모아 선택과 집중이라는 발전전략으로 밀어붙인 특화된 형태의 리더십이다. 자원이 부족한 후진 국가가 선택한 불가피한 경제발전전략이었고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볼록렌즈는 햇빛을 모아 불을 일으킨다. 박정희 리더십은 말하자면 60~7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헐벗은 땅에 흩어지던 햇빛을 모아 민족부흥의 장작불을 일으킨 볼록렌즈였다. 어떤 장작을, 어디에, 얼마큼 쌓을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에 민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고, 장작의 열기와 빛이 온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은 부분은 압축적 산업화의 그림자다.
 

1977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 중앙포토>


 
 한때 중국 동북부 전 지역을 점령했던 광개토대왕의 후예이면서, 전세계 GDP의 40% 이상을 차지하던 7세기 세계최강국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했던 전사들의 후손이 현재 북한 지역의 한국인이다. 조선 상인의 대명사 개성상인의 경제적 재능은 19세기에 이미 현대적 복식부기를 사용할 만큼 선진적이었다. 일제 36년 동안 일본은 산업시설의 대부분을 북한 지역에 건설했다. 한반도 지하자원의 대부분은 북한지역에 매장되어 있다. 1948년 이후 한 민족 두 체제의 경쟁이 한반도에서 벌어졌다. 누가 봐도 승부는 뻔해 보였다. 예상을 뒤엎은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3대 세습의 결과 정치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국제적으로 북한사회는 거의 재앙의 수준까지 추락했다. 같은 민족, 다른 리더십의 결과가 오늘 남북한의 차이다.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하고 나오는 북한 주민들.<사진 중앙포토>


 
 1775년 독립전쟁 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던 후진국 미국은 19세기 거미줄처럼 도시를 연결한 철도의 규격화와 동서횡단철도의 건설 이후 대서양과 태평양이 육로로 연결되면서 드디어 세계최강국가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이 초석을 링컨 대통령이 깔았다. 산업화시대 철도와 도로와 공장이 국가발전의 혈관이라면 21세기 정보통신시대의 혈관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이어주는 IT다. 산업화 시대의 화두가 독점과 배제였다면 정보화시대의 화두는 개방과 공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황무지에서 산업화를 이끈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독점과 배제, 선택과 집중이라는 통치술을 견학했지만 아버지 사후 급변하는 사회, 산업인류에서 정보인류로 진화하는 인간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다. 박정희 향수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물려준 발전지향의 DNA가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 현실에서 다시 재연되는 성취를 보고자했지만 불행히도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DNA는 산업화시대에 고정되어 진화를 멈춘 상태였다. 우린 박근혜라는 인물을 몰랐고, 박근혜 대통령은 진화한 대한민국을 몰랐다. 이게 비극이다. 
 

링컨 대통령 동상 앞에서 환담하고 있는 오바마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사진 중앙포토>


 
 리더십이 절실한 시기에 리더십이 통째로 허공에 뜬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나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는 톨스토이의 지적은 가정뿐만 아니라 국가차원에서도 유효하다. 좋은 가장이 좋은 가정을 만드는 것처럼  좋은 리더가 좋은 나라를 만드는 건 분명하다. 역사적으로도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시기엔 반드시 성군이 있었다.
 
 운명적으로 잘사는 사회는 없다. 그런 사회는 정의롭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운명적으로 못살아야 할 사회 역시 없다. 운명은 불확실성이 본질이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사회이든 구성원 각자의 노력에 따라 운명이 정해진다. 모두 열심히 하는 것은 공동체가 강해지기 위한 기본이다. 그러나 분산된 노력은 허약하다. 개인 차원의 노력과 노력을 한 방향으로 이어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다. 배제와 독점, 힘과 고집이 아닌 개방과 공유,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에 과연 박근혜 리더십과는 다른 어떤 리더십이 탄핵 이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nsi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