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데스크에서] "No!"를 제도화하라

바람아님 2017. 1. 27. 11:13

(조선일보 2017.01.27 이위재 산업1부 차장)


126년 전통을 가진 독일 철강업체 티센크루프는 2000년대 후반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손실이 계속 늘자 강력한 카리스마를 휘두르던 에크하르트 슐츠 회장이 물러났다. 

그리고 조금씩 회복세로 돌아섰다. 

그 뒤 '슐츠 시절'을 다룬 언론 보도를 통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졌다.


"이 기간에 티센크루프는 슐츠가 사령관으로 있는 군대처럼 운영됐다. 비판은 용납되지 않았고 토론은 사라졌다. 

슐츠가 관심을 가진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문제점은 숨기고 다들 프로젝트를 찬양했다(중략). 임원회의는 전당대회 같았다. 

슐츠가 연설하는 동안 임직원들은 적당한 타이밍에 손뼉 쳤고, 질문은 홍보실에서 미리 나눠준 내용을 순서에 따라 

읊는 것으로 갈음했다. 

돌발 질문은 금기였다. 슐츠는 무소불위(the untouchable)였다."


상명하복(上命下服)과 존명(尊命).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다. 바로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한 패러다임이다.

지금도 정부와 학교, 기업, 정치권 곳곳에서 깊게 뿌리 내려 있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발표한 기업 문화 진단 보고서에는 한 외국인 임원 발언이 나온다. 

"한국 기업 임원실은 엄숙한 장례식장 같다. 임원 앞에서 정자세로 서서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업무 지시에 왜(Why)도, 

아니다(No)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따지고 보면 이번에 문제가 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도 결국 상부 지시나 

명령에 대해 "안 된다"고 반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국내 한 항공사는 1990년대 말 200여명이 숨지는 대형 추락 사고를 겪고 나서 조종실 문화 개혁 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당시 사고 원인 중 하나가 기장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듯한데도 부기장이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 탓이라는 보고서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예스맨 이론'이란 논문을 발표한 캐니스 프렌더개스트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예스맨이 많은 조직은 최선의 결정보다 

최고위층 입맛에 맞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면서 "결국 시행착오를 겪고 제대로 된 결정을 다시 내리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우린 그동안 이런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꽤 애썼다. 그런데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사실 조직 문화는 무슨 교육을 하고 구호를 외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핵심은 제도를 설계하는 데 있다. '침묵의 동맹'을 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예를 들면 교황청에서 고안해 서구에선 일반 토론장에까지 흔히 등장하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처럼 

어떤 자리에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는 구성원을 두는 것이다. '노 맨(No-man)'을 제도화하자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메커니즘을 다채롭게 디자인하고 실행할 때 견고한 구(舊)체제를 혁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