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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문 동굴인'이 밝힌 진실, 한국인 뿌리는 북방계 아닌 혼혈 남방계

바람아님 2017. 2. 2. 23:30

'악마의 문 동굴인'이 밝힌 진실, 한국인 뿌리는 북방계 아닌 혼혈 남방계

 중앙일보 2017.02.02 04:00


울산과기원팀 '동굴인' 지놈 해석
3만~4만 년 전 동남아에서 와 정착
현 한국인과 갈색 눈 유전자 등 같아
우유 소화 못하고 고혈압에 취약
베트남·대만 원주민계열도 합쳐져

한민족의 뿌리는 어디일까. 인류·고고학계 일부에서는 한민족이 알타이 산맥에서 출발, 몽골과 만주 벌판을 지나 한반도로 들어온 북방민족이라고 추정한다. 이들 지역 사람의 언어·풍습·생김새 등에 공통점이 많다는 게 그 근거였다.


하지만 과학계의 판단은 다르다. 2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에 따르면 한민족은 3만~4만 년 전 동남아~중국 동부 해안을 거쳐 극동지방으로 흘러 들어와 북방인이 된 남방계 수렵 채취인과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1만 년 전 같은 경로로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의 피가 섞여 형성됐다. 2009년 UNIST는 한민족이 동남아시아에서 북동쪽으로 이동한 남방계의 거대한 흐름에 속해 있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했는데, 이번에 이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단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트크 위쪽 프리모레 지역의 ‘악마의 문’(Devil’s Gate)이란 이름의 동굴에서 발견된 7700년 전 20대와 40대 여성의 두개골이었다.

프리모레는 한국 역사 속 옛 고구려·동부여·옥저의 땅이다. 게놈연구소는 수퍼컴퓨터를 이용해 이 두개골들의 유전체를 해독, 분석했다.


DNA 분석 결과 악마의 문 동굴인은 3만~4만 년 전 현지에 정착한 남방계인으로, 한국인처럼 갈색 눈과 ‘삽 모양의 앞니’(shovel-shaped incisor)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들은 현대 동아시아인의 전형적인 유전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와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은 유전자, 마른 귓밥 유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악마의 문 동굴인은 현재 인근에 사는 ‘울치(Ulchi)’족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근처 원주민을 제외하면 현대인 중에서는 한국인이 이들과 가까운 유전체를 가진 것으로 판명됐다. 이들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종류도 한국인이 주로 가진 것과 같았다.


박종화 UNIST 게놈연구소장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종류가 같다는 것은 모계가 같다는 것을 뜻한다”며 “두 인류의 오랜 시간 차이를 고려해도 유전체가 매우 가까운 편으로, 악마의 문 동굴인은 한국인의 조상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악마의 문 동굴인의 유전체가 한민족의 모든 부분과 일치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정확한 한국인의 민족기원과 구성을 계산하기 위해 악마의 문 동굴인과 현존하는 동아시아 지역 50여 개 인종의 유전체를 비교했다. 그 결과 악마의 문 동굴에 살았던 고대인과, 현대 베트남 및 대만에 고립된 원주민의 유전체를 융합할 경우 한국인에게 가장 잘 표현됐다. 시대와 생존 방식이 달랐던 두 남방계열의 융합이었음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대 한민족의 유전적 구성은 1만 년 전 농경시대의 남방계 아시아인에 훨씬 더 가깝다. 수렵 채집이나 유목을 하던 극동지방 수렵 채취인보다 논농사를 하던 남방계 민족이 더 많은 자식을 낳고 빠르게 확장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수렵 채집을 위주로 생활하던 옛 극동지방 부족들의 현재 인구는 많아도 수십만 명을 넘지 않는다.

박종화 소장은 “거대한 동아시아인의 흐름 속에서 기술 발달에 따라 작은 줄기의 민족들이 생겨나고 섞이면서 한민족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UNIST의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일자(미국 현지시간)에 발표됐다.


최준호 기자



[여적]한국인의 게놈

경향신문 2017.02.02 20:52

한국의 건국신화는 천손(天孫)신화와 난생(卵生)신화로 나눌 수 있다. 백성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으로 내려온 고조선 단군의 아버지 환웅과, 오룡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북부여 해모수는 대표적인 천손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반면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락국의 김수로 등 6가야 임금은 모두 알(卵)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천손신화와 난생신화의 교묘한 융합이다.


주몽은 천손신화의 주인공인 해모수와 정을 통한 어머니(유화 부인)가 낳은 알에서 태어났다. 하늘의 빛이 자꾸만 유화 부인에게 비치면서 주몽(알)을 임신했다. 또 박혁거세가 태어난 알의 옆에 천마가 기다리고 있다가 사람들이 다가오자 하늘로 올라갔다. 이 밖에 하늘에서 내려온 보자기에 싸인 황금그릇 안에서 알 6개가 확인됐는데, 이들이 6가야의 시조이다. 나무에 매달린 황금 궤짝에서 태어난 김알지도 천손(나무)과 난생(궤짝) 신화의 융합을 의미한다. 천손신화의 주인공은 나무·산·하늘 등에서 땅으로, 난생신화의 주인공은 알·박·궤짝·배(舟) 안에서 밖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몽·혁거세·김수로 등 한 사람의 탄생과정에 두 가지 신화가 섞인 이유는 무엇일까.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는 “정신적인 고향이 다른 두 종족의 사회결합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천손신화는 북방유목 문화, 난생신화는 남방농경 문화를 각각 뿌리로 두고 있다. 만주와 한반도는 바로 두 신화의 융합지점인 것이다. 남방의 고인돌, 북방의 금관 문화가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울산과학기술원이 최근 러시아 극동의 악마문 동굴에서 수습한 7700년 전 인골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도 다르지 않다. 한국인의 뿌리가 수천년간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융합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실제 유전적 구성은 남방계 아시아인에 가깝단다. 설령 천손신화로 무장한 유목 세력이 난생신화 지역을 지배했어도 절대 다수의 백성은 농경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동안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여겨졌던 천손·난생의 결합신화가 수천년 만에 과학의 옷을 입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