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2.11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박제가 '북학의'
정조 2년(1778년) 박제가(朴濟家)는 북경으로 가는 사절단인 연행사(燕行使) 대열에 끼어 있었다.
2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그는 중국의 선진 문물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북경에 머무는 동안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했고,
조선으로 돌아온 직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북학의(北學議)'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박제가의 글은
그와 뜻을 같이하는 실학파 동료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청(淸)의 앞선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종의 기술도입론을 펼치고 있다. 청나라에 대해 명(明)을 멸망시킨 오랑캐로 치부하는 소중화(小中華) 사상이 만연한
18세기 조선의 맥락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주장이었던 셈이다.
'북학의' 내편은 건설 기술(벽돌·주택), 토목 기술(도로·교량), 군사 기술(활·화살·총) 등을 다루고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완역 정본) 북학의
박제가 지음/ 안대회 교감 역주/ 돌베개/ 2013/ 544p
151.58-ㅂ486불/ [정독]인사자실(2동2층)/ [강서]2층 인문사회자연과학실
일례로 '교량'에 대한 박제가의 설명을 보자.
"무지개다리를 세우는 법은 나무를 엮어서 다리의 틀을 만들고, 벽돌이 마른 다음에 그 나무틀을
뽑아 버린다… 다리를 아치형으로 둥글게 만들고자 애쓰는 이유는 다리를 높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치(arch) 구조는 기원전 2500년부터 다리나 돔과 같은 대형 구조물에서 이용됐다.
큰 하중을 효과적으로 견딜 수 있으나 갓돌(capstone)을 얹기 전까지는 매우 불안정해 만들기
까다로운 구조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북경의 다리를 보며 아치형 교량을 짓는 방식을 설명하고
그 유용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박제가는 청나라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백성의 삶을 개선하고 근본적인
사회구조의 변동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위치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위계를 타파하고 사대부 역시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박제가의 일갈을 들어보자.
"저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큰 좀벌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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