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2.22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도구 만들어 쓰는 동물 많지만 오직 인류만 도구로 도구 만들고
연쇄적 '도구 만들기'로 문명 발전… AI가 AI 만드는 날 도래하면
인류사에 전인미답의 時空 열리고 사람이 필요 없는 세상 될 수도
수학의 증명방법 중 '수학적 귀납법'이라는 것이 있다.
임의의 자연수 n에 대해서 어떤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고등학교 수학에서도 자주 이용한다.
(1)먼저 n=1일 때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보인다.
(2)다음에는 일반적인 자연수 n에 대해서 그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가정한 다음, n+1에 대해서도 성립함을 보인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위의 (1)과 (2)를 함께 보이는 순간, 모든 자연수 n에 대해서 이 명제가 성립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증명 끝.
(1)을 통해 튼튼한 바닥 위에 벽돌 한 장의 기초를 놓고,
(2)를 통해 벽돌 위에 딱 한 장의 벽돌을 더 올리는 법을 알려준다. 이제 우리는 무한히 높게 벽돌을 쌓을 수 있다.
한 번에 100층의 벽돌을 쌓는 방법을 알 필요가 없다. 현재 쌓인 벽돌 위에 벽돌 딱 하나만 더 올릴 수 있어도,
1층에서 시작해, 100층, 1000층, 얼마든지 높게 벽돌을 쌓아 올릴 수 있게 된다.
생물의 진화 과정도 마찬가지다.
첫 생명체가 해결한 것은 수많은 세대를 거쳐 자손을 수천 년 뒤까지 남기는 방법이 아니다.
자기로부터 시작해 딱 한 세대 아래의 자손을 남기는 방법을 배웠다.
이 '한 단계 나아감'의 연쇄가 결국 현재 지구 위의 수많은 생명체를 만든 거다.
단세포 생물체로부터 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다세포 생물체가 진화한 것도 마찬가지이리라.
두 개의 단세포 생명체가 모여서 하나의 생명체가 되는 방법을 배우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을 배웠다면, 둘씩 묶인 둘이 모여 넷이 되는 것, 넷씩 묶인 둘이 모여 여덟이 되는 이후의 과정은,
둘이 모여 하나가 된 첫 단계에 비하면 훨씬 쉬웠으리라.
지구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 중에, 어떤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도구를 이용하는 동물은 많다.
나뭇가지를 이용해 벌레를 잡고, 돌로 두드려 딱딱한 껍질을 깨고 열매를 먹는다.
사람과 다른 동물의 차이점은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다른 점은 바로, 도구를 이용해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거다.
수학적 귀납법의 벽돌 쌓기처럼, 도구를 이용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순간, 도구를 이용해 만든 도구를 모아 또 다른 도구를
만드는 연쇄반응이 시작된다. 주변을 둘러보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도구 중에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것이 정말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 도구들을 가지고 얼마든지 다른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이제 사람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의 출현이다.
도구로 도구를 만드는 연쇄과정을 과거 수만 년 동안 이어왔지만,
과거의 모든 과정에서 도구 제작과 사용의 주체는 당연히 사람이었다.
내가 단단한 돌로 만든 석기로 무른 돌을 가공해 날카로운 돌화살촉을 만들 때, 화살촉을 만들어 사용할 주체는
도구인 석기가 아니다. 바로 사람인 '나'다.
지금까지의 인공지능 역사를 통해, 귀납법의 '바닥에 기초 놓기'는 이미 완성됐다.
우리는 이미 사람보다 바둑을 잘 두는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이제 귀납법에서 더 중요한 단계, 즉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단계가 다가오려 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자유롭게 아무런 제약 없이 만드는 첫 단계가 이루어지는 순간,
인공지능의 무한 연쇄가 시작될 수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자연적인 제약에서 자유로워 얼마든지 짧은 시간 안에도
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 오늘 밤 내가 평상시처럼 저녁 먹고 이야기 나누다 잠들었는데,
내일 아침에는 완전히 다른 인공지능의 새 세상에서 눈을 뜰 수도 있다.
그 세상에서도 인간이 필요할까.
사람 없는 지구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진화의 당연한 다음 단계일까.
사람 없는 세상은 우리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지금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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