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살인의 인사청문회 바꿔 불법투기 15점, 위장전입은 5점
세금 면탈은 10점으로 해 위법 정도에 따라 점수 매겨보자
품행 방정한 순도 100% 인재는 예나 지금이나 찾기가 참 어렵다
한국의 고위 공직자 자격요건이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인물 검증 동의서는 20개 항목이 고작이다. 그걸 기반으로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관계기관이 정밀 검토를 한다. 미국은 사전 검증만 233개 항목, 정부윤리청(OGE)이란 별도의 전담기관이 샅샅이 훑는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린다. 민주주의를 발명한 나라, 청교도 나라이니 그럴 법도 하다. 유교국가 조선은 어떠한가?
미국만큼 철저하지는 않았지만 중앙에서는 당상관과 삼사(사간원·사헌부·홍문관)가 현능한 자를 두루 천거한 인재풀 망단자(望單子)를 만들었다. 현량하고 직언하는 선비를 골라 조정에 올리는 거현(擧賢)도 지방 수령이 마땅히 할 일이었다. 천거의 기준은 학식·재능·덕망 세 가지였는데, ‘몸가짐이 바른 사람’을 최고로 쳤다. 도덕정치의 요건, 요즘 식으로 ‘5대 원칙’이다. 그런 인재를 찾기란 조선시대에도 어려웠나 보다. 성종조 이조판서 강희맹이 사직상소를 올렸다. “사(私)를 따르면 국정을 그르치고, 천리(天理)를 따르면 인정(人情)을 뿌리쳐야 합니다. 인정과 천리를 아울러 행하는 자를 구하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망단자에 올린 인물도 삼사의 검증을 거의 통과하지 못했다. 망단자는 거듭 수정됐고, 공석이 늘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가 야멸차게 내세운 ‘5대 원칙’은 결국 발목 잡기다. 공직자는 청렴해야 하지만 스스로 친 정의의 덫에 걸렸다. 강희맹이 사직상소를 올린 심정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성종이 강희맹을 위로했다. “어찌 다 유능하고 현량한 자라야 등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약간의 얼룩을 확대해 인격을 말살하는 풍경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국정 공백이 더 화급한 시기에 조금 물러선다고 나라가 결딴나는 것은 아니다. 야당도 인수위 없이 출발한 정부의 사정을 헤아려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안한다. 차제에 청문회 평가방식을 바꾸면 어떨까 한다. 점수제나 등급제 말이다. 하나의 오점을 내세워 천하의 불량자로 낙인찍는 비정한 방식을 바꿔야 인재를 구할 수 있다. 가령 5대 원칙 중 불법투기는 15점, 위장전입은 5점, 세금 면탈은 10점 급간을 주고 위법 정도에 따라 세부 등급 점수를 매긴다. 그렇게 구한 불법점수를 100점에서 빼면 도덕성 점수를 구할 수 있다. 대략 80점 이상이면 통과시키는 방식이다. 상식을 넘는 불법은 제외다. ‘도덕성’과 함께 ‘사회기여도’ ‘정책역량’도 점수화해 적부를 가늠할 수 있다. 세 범주 평가점수를 종합해 여야 협상에 나서면 인격살인 없는 합의점 도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도덕성이 완벽한 인물이 국정 수행능력이 최고라는 보장은 없다. 정책 식견이 뛰어난 자가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는 보장도 없다. 굴곡진 시대, 민주주의 30년에 무결점 인재를 못 박는 것이 자승자박은 아닐까 해서다. 세월이 지나면서 상식적 합격선을 차츰 올리면 된다. 나랏일을 맡을 미래세대에게도 실수를 줄여 나갈 기회를 줘야 한다. 순도 100% 인재 발탁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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