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중국의 내공이 생각만큼 깊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졸부(猝富)가 보여주는 그 어떤 면모를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나는 중국의 명산(名山), 보이차, 수정방(水井坊) 때문에 중국 취향을 끊을 수 없다. 특히 중국 명산들의 장엄하고 기괴한 풍광은 한국 사람의 원초적 심성에 어필하는 바가 많다. 중장년의 한국인에게 산은 세상의 시름을 달래주고 '왜 이 세상에 왔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구원의 장소이다.
대만의 이림찬 선생이 쓴 '중국미술사'(장인용 번역)를 보니 중국 역대급 산수화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면서 흥미롭다. 토박이 전문가가 쓴 내용이라 서양학자 글과는 결이 다른 것 같다. 이림찬이 대만 고궁박물원에 수십 년간 근무하면서 작품들을 직접 들여다보고 썼으니 오죽하겠는가. 범관(范寬·950~ 1032)의 명작인 '계산행려도(谿山行旅圖·산과 골짜기를 지나감)'에 대한 설명도 마음에 든다. 암봉(巖峰)이 주는 장중함을 잘 표현해 평소 필자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압도하는 바위 봉우리가 인간의 욕심과 한을 짓이겨 부숴버린다는 필자의 관념에 아주 부합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삼단논법으로 이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산 정상의 나무와 풀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각도이고, 낮은 산의 사원은 능선에서 바라본 각도이고, 시냇가의 바위들은 평지에서 바라다본 시각이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각도가 이 작품에 모두 들어 있다는 이림찬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림 보는 재미가 배가 된다. 황공망(黃公望)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도 좋다. 후한(後漢)의 엄광(嚴光)이 친구인 광무제가 주는 벼슬을 사양하고 숨어 살았던 곳이 부춘산이다.
한국에선 은퇴한 많은 이가 산 밑에 전원주택을 짓고 들어간다. 산에서 살려면 산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알아야 한다. 산 밑에 사는 라이프스타일이 동양 정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외롭지 않고, '이만하면 상팔자로구나!'를 안다. 그러기 위해 미술사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수화가 지닌 의미를 알면 귀촌 생활이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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