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냄비근성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스스로 이것을 인정하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손해가 된다고 인식하는지, 어떻게 고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 아는 것처럼 냄비근성은 부르르 끓었다가 곧 차갑게 식어버리는 냄비 같은 성질을 일컽는다. 라면 끓여먹는 작은 냄비.
우리 사회는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일제히 일어나 물어 뜯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 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전체가 까맣게 잊고 만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바로잡아져야 했을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는 당연히 그대로 존속하고 똑 같은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
냄비근성의 문제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여론이 한창 들끓었을 때, 중국의 한마디 한마디에 온 나라가 들썩들썩 했었던 기억이 있다. 자국의 주권과 국가 안전보장에 대한 문제라면 다른 나라의 언급은 참고할 사항일 뿐 그 나라를 휘청거리게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야 정상이라 할 것이지만 이번에 중국은 한국은 한마디만 툭 던지면 휘청거리는 나라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에게 당연히 있어야 할 철학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의 경우도 덜 성숙하거나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상대의 말에 금새 반응하고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는데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고 자기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보자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향으로 가는 것 같으니까 나도 그 방향으로 간다. 정신 나간 사회 (전체주의적 사회 심리구조)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다. 한 술 더 떠서 正論으로 올바른 사회 여론 (그 사회의 발전에 유익한) 을 이끌어 가야 할 언론은 전혀 보도 방향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일반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니까 우리도 이런 기사를 취재하고 신문/방송에 올린다는식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소위 촛불로 탄생한 정권은 사회 약자를 보호한답시고 최저 임금을 올리네 해서 영자업자들을 망할 지경으로 몰고 있고 한창 뻗어나가야 할 원자력 기술을 스스로 死葬 시키려 하고 있다. (명분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치밀한 분석과 검토,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세계가 존경하는 삼성그룹의 총수를 뇌물 죄라는 명목으로 감옥에 쳐 넣으면 무슨 정의라도 실현되는 줄 알고, 우방과는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받아주지도 않는 대화를 북한에 제안해서 눈 쌀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 취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북한 문제는 이미 대한민국의 문제만이 아닌 국제적으로 반드시 협의/협력해야할 문제가 되어있다)
아무런 철학도 없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때론 국제 정치적으로 지금 보다 나은 영구적인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깊은 고민 없이, 파장이나 영향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 없이 그저 단말마적 수준의 정치 행태들이 이어지고 있다. 말이 목마르다고 하니 그냥 억지로 끌고 가서 물 한번 먹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환자는 수술대에 누워있는데 칼 잡은 의사가 영 미덥지 않은 꼴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냄비근성을 고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소위 뒤끝이 필요하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끝까지 철저히 문제점을 추적하여 고쳐질 때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냄비근성이 철저히 시스템적으로 고쳐져야만 우리가 세계질서에 영향력을 끼치는 주도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J플러스]
입력 2017.07.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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