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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 대북 협상, 기대치 낮추면 희망이 보인다

바람아님 2018. 2. 3. 09:51


중앙일보 2018.02.02. 01:49

 

올림픽으로 조성된 대화 국면이
중요 계기 될 가능성 배제 못 해
성과 없는 결과 나올까 걱정돼도
일단 북한에 탈출구는 보여줘야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대화 복원 시도는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의 야당과 미국의 정치 분석가들은 천진난만한 처사라고 평가하며 북한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질 것을 우려한다. 게다가 여자 하키팀을 비롯한 올림픽 단일팀 제안이 예상치 못한 반대에 부닥쳤다. 지지율도 추락했다. 그렇지만 성급한 예단을 멈추고 문 대통령에게 뜻을 펼칠 기회를 제공해 보자.


북한은 올림픽을 협박 카드로 삼아 문 대통령을 궁지로 몰았다. 신년 연설에서 김정은은 도발적인 태도로 평창올림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한국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강행하며 북한에 감정적으로 맞대응하지 않고 북한을 올림픽에 참가시켜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가장 우려를 낳는 부분은 북한의 동맹 균열 시도다. 북한은 대북 제재, 합동훈련, 나아가 한·미 동맹 그 자체의 문제에서 한국과 미국을 떼어놓으려 한다. 그렇긴 하지만 동맹 균열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는 비판자들의 주장에도 그다지 명확한 근거는 없다. 문 대통령은 한국 정부 주도로 북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 가능성이 배제돼서는 안 된다. 물론 한국 정부는 국제적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수를 지향한 전 정부들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남북 관계에 있어 이렇다 할 업적을 갖고 있지 않다. 한국 정부는 좌우를 막론하고 남북 관계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낸 적이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글로벌 워치 2/2
문재인 정부는 대북 협상에서 긴장 완화를 목적으로 한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대북 제재 완화 카드는 꺼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거래는 강탈을 허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로 대화의 물꼬를 터왔다. 그러나 이 또한 북한의 약탈성과 파렴치함을 보여주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북한은 탈북 여성 12명의 송환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왜 남북 협상에 이산가족이 볼모가 돼야 하는가? 일단 시작하는 게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협상 수단으로서 삼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는 무엇을 양보할지 고민하지 말고 얻으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정은의 말에 주목해야 한다. 신년 연설에서 그는 남북한의 인적 교류 증진을 언급했다. 한국의 정당들은 이 제안을 일제히 환영해야 한다. 북한에 사람이 가고, 북한에서 사람이 나오는 일을 국가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미 양국은 지금까지 이런 일을 소홀히 여겨왔다.


다른 방안은 김대중 정부에서 북한과 접촉할 때 원칙으로 삼았던 ‘정치와 경제의 분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정부 돈을 받아 온 비정부기구(NGO)가 북한을 지원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민간 NGO가 자체 기금으로 인도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허용해야 한다. 이는 대북 제재 원칙에 위배되지 않고 부작용도 적다.


한·미 양국 정부는 최근의 군사 고위급 회담과 같은 남북 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최근 이 회담에서는 구체적인 신뢰 구축 조치를 논의했다. 여기에는 투명성을 높이고 오판의 위험을 낮추려는 노력이 수반될 수 있다. 그리고 향후에는 비무장지대(DMZ)에서의 군사적 충돌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전력 재배치 논의도 이뤄지길 기대한다.

DMZ 관련 사안보다 중요한 부분이 북방한계선(NLL) 보존에 대한 양측의 이해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군사적 충돌은 그 주변에서 일어난다.


북한과의 협상이 성공할 확률이 희박한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기대치를 너무 높이면 정치적인 위험이 뒤따른다. 반대로 위험을 부풀리는 행동 역시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예상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때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선전용으로 경기를 활용했다. 북한 선수들이 돌아간 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핵실험을 재개했다.


그렇다 한들 재앙적 수준의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다. 이미 겪어본 일 아닌가. 그 정신이 좀 퇴색되기는 했으나 이제 마음껏 올림픽 정신을 누릴 때가 됐다. 한국 정부가 뜻을 펼쳐볼 기회를 주자. 대북 제재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탈출구를 찾는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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