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신혼여행지 몰디브 비상사태 선포>, <‘신혼여행의 꽃’ 몰디브 국가 비상사태>, <‘허니문 명소’ 몰디브 국가비상사태> 지난 6일 긴급 타전된 몰디브의 정정 혼란을 보도한 국내 주요 매체의 기사 제목입니다. 모두 ‘신혼여행’이 수식어로 붙었습니다. “여행객 안전 우려”, “신혼부부 방문 자제” 등의 내용도 빠짐없이 포함돼 있죠.
바닷가에서 모히토 한잔하며 꿈같은 휴가를 보낼 수 있는 낙원. 흔히 떠올리는 것처럼 몰디브가 천국 같은 휴양지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 사실이 반쪽짜리라는 게 함정이죠. 인구가 40만 명뿐인 섬나라의 정치적 혼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가 관광객의 안전 때문만일까요.
오늘의 [알고보면 쓸고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에선 몰디브의 나머지 반쪽을 알아보겠습니다.
━ 무슬림 99%…사우디만큼 순도 높은 이슬람 국가
2014년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몰디브 여행 기사 제목은 ‘1000개의 섬, 2개의 세계(1000 Islands, 2 Worlds)’였습니다. 몰디브에 대한 정확한 설명입니다. 몰디브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일반 국민이 거주하는 세계와 관광객만 드나드는 세계입니다.
몰디브는 인구의 약 99%가 무슬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만큼 순도 높은 이슬람 국가죠. 헌법도 ‘무슬림이 아니면 몰디브 시민이 안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015년 영국 가디언의 기사 ‘기독교인에게 최악의 국가’에 따르면 몰디브에선 관광객도 성경책을 갖고 다닐 수 없습니다. 몰디브인이라면 성경책을 지닌 것만으로 극형에 처할 수 있고요. 돼지고기와 술은 당연히 금지됩니다. 길거리에서 애정표현 하는 것도 안 됩니다. 사방에 해변이 있다고 수영복을 입을 수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리조트에선 가능합니다. 입국할 때 술을 반입할 순 없지만, 리조트에선 만취해도 됩니다. 옷차림도 마음대로, 애정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메뉴도 준비돼 있죠. 리조트는 치외법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섬마다 리조트가 딱 하나씩만 들어서 완전하게 고립·격리돼 있어 이런 것이 가능합니다.
몰디브는 인도양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1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사람이 사는 섬은 200개에 못 미칩니다. 1972년 무인도에 첫 리조트가 문을 열었고, 이후 들어선 리조트가 100개를 넘습니다. 아름다운 풍광과 완벽한 사생활 보호로 관광객을 끌어모은 덕에 몰디브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유명해졌죠.
인구가 약 40만인데, 몰디브를 찾는 관광객 수는 매년 100만 명을 웃돕니다. 관광업이 GDP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 절대적입니다. 몰디브 정부가 두 개의 세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 급진주의 득세…인구 대비 IS 대원 최다 배출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좀 달라졌습니다. 2008년 들어선 민주 정부가 종교적 자유를 어느 정도 용인한 뒤 오히려 급진주의가 득세하는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극보수화하면서 2013년 양부에게 성폭행당한 15세 소녀에게 혼외정사 혐의로 공개 태형 100대 선고가 내려지는가 하면, 지난해엔 이슬람 급진주의를 비판한 유명 블로거가 참혹하게 살해됐습니다.
몰디브에서 급진 세력 움직임이 가시화됐다는 신호는 또 있었습니다. 2015년 말 미 안보컨설팅업체 수판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몰디브에서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이라크로 떠난 사람만 200명에 달했는데, 이는 인구 대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이에 따라 몰디브 정부는 지난해 대테러센터를 구성해 만일에 대비한 안전·안보 수칙을 리조트들에 공지하기도 했습니다. 무방비 상태의 여행객은 테러의 충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소프트 타겟’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튀니지·말리 등의 럭셔리 리조트에선 지하디스트의 테러가 발생했으니 몰디브라도 안심할 수 없는 거죠. 이번 국가비상사태 이전부터 몰디브 여행객을 향한 주의 경보는 이미 발령돼 있던 겁니다.
━ 현·전 대통령의 갈등…양쪽 오가는 박쥐 독재자
정치 상황도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압둘라 야민 몰디브 대통령은 야당 인사를 석방하라는 대법원의 결정을 이행할 수 없다면서 5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법원 판사들을 체포했습니다. 야당 인사를 석방하면 여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어 재선 구도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위해 사법 체계를 흔들고, 군을 동원해 야당을 탄압하는 대통령은 얼핏 봐도 민주주의 파괴자입니다. 이쪽이 악이라면, 저쪽은 선일까요.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갈등의 축은 야민 현 대통령과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입니다. 또 그 둘 사이를 오가는 독재자 압둘 가윰 전 대통령이 있습니다. 가윰은 1978~2008년 몰디브를 통치한 독재자. 내내 단독출마해 6선을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꺾지 못해, 2008년 치러진 첫 직선제 대선에서 나시드에게 패합니다.
나시드는 가윰에 맞서 약 20년을 투쟁하며 16번이나 투옥된 민주투사였습니다. 그는 취임 후 야심 찬 개혁 정책을 펼쳤는데, 특히 기후변화 대응에 역점을 뒀죠.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몰디브가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며 친환경 정책을 적극 추진했고, 수중 내각회의를 열어 세계의 이목도 집중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몰디브의 존재감이 꽤 커졌습니다.
━ 배신과 야망의 막장 정치드라마 그러나 부패 혐의와 물가 급등으로 민심이 이반했습니다.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가윰의 야당 측은 틈을 놓치지 않았죠. 장관들을 사임시키고, 새 장관 임명을 미뤄 교착상태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나시드는 취임 3년 3개월만인 2012년 2월 하야를 선언합니다. 며칠 뒤 “강제로 사임해야 했다. 명백한 쿠데타다”고 번복했지만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나시드는 2013년 치러진 대선에 재출마했고 야민 현 대통령에게 패했습니다.
야민은 가윰의 이복동생입니다. 민주투사에게 정권을 뺏긴 늙은 독재자가 동생에게 권력을 쥐여줬던 거죠. 하지만 부모 자식간에도 나눠 갖지 않는다는 권력을 이복형과 나눌 리 만무합니다. 야민과 틀어진 가윰은 자신이 고문했던 나시드와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야민은 나시드를 탄압합니다. 반테러법을 적용해 감옥에 보내고, 다른 야당 인사들도 잡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 대법원이 석방과 재심을 명령한 겁니다.
야민은 가윰도 6일 새벽 체포했습니다. 난데없이 저항 인사가 된 가윰은 체포 직전, 국민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개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들이 결심을 지키길 부탁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독재자와 민주투사가 손을 잡는 그야말로 막장. 권력자들의 물고 물리는 정치게임이 몰디브 국가비상사태의 전말입니다.
━ 인도의 몰디브 ‘독점권’ 빼앗은 중국 몰디브는 세계열강이 파워게임을 벌이는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뒤 인도 일간 퍼스트포스트엔 ‘말레는 인도-중국 대리전의 마지막 무대:뉴델리는 개입해야 한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하라는 정부를 향한 노골적인 주문입니다.
인도는 앞바다에 있는 몰디브와 오랫동안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1965년 몰디브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 이를 가장 먼저 인정한 국가가 인도였습니다. 독립 이듬해엔 수교도 맺었고요. 인도는 경제적·군사적으로 몰디브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원조 차관을 제공했고, 사회 인프라 건설을 지원했습니다. 교육 사업으로 인적 자원 양성도 도왔습니다. 군사협력을 통해 몰디브의 국가 안보도 지켜줬죠. 인도가 ‘빅 브라더’라 자처할만한 관계였습니다.
이 관계는 중국이 몰디브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면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시진핑 주석은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 몰디브를 방문했습니다. 이후 중국은 공격적으로 몰디브 공세에 나섭니다. 대규모 투자·경제 지원을 받은 몰디브 정부는 공항 확장 등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중국 기업에 허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도 기업들의 계약은 취소됐죠.
현재 몰디브 국가 부채의 70%는 중국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중국이 몰디브의 가장 큰 대출 기관”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지난해 12월 야민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자유무역협정(FTA)까지 맺었으니, 두 나라는 더 가까워질 것이 분명합니다.
━ “몰디브는 인도-중국의 대리전 무대” 인도는 몰디브를 향한 중국의 구애에 속셈이 있다고 봅니다. “중국의 관심은 작은 섬나라가 약속할 수 있는 작은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전략”이라는 겁니다. 인도양 한복판에 넓게 자리 잡은 몰디브를 거점 삼아 중국이 군사력을 확장하려 한다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이미 동아프리카 지부티에 첫 해군기지를 가동해 인도양에 진출한 터라 인도가 우려할 만도 한 상황입니다.
중국은 우회적으로 인도를 견제 중입니다. 외교부의 첫 입장 발표가 평이했던 대신 관영매체인 환구시보가 나섰습니다. 신문은 인도 언론을 걸고넘어졌습니다. “인도 매체는 일제히 중국과 현 몰디브 대통령이 밀접한 관계라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인도는 몰디브의 현 국면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며 정치적인 요소들을 이용해 현 국면을 해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인도 정부와 협력관계였던 나시드 전 대통령은 인도에 무력 개입을 요청했습니다. 집권 이후 친중 행보를 보이는 야민 대통령에 대한 인도의 불만과 우려에 호소한 겁니다. 인도가 실제 몰디브 내정에 개입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인도―호주―일본―미국을 연결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현 사태와 맞물리게 된다면 국제 정세에 어떤 요동이 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편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몰디브 정부와 정당이 현재 상황에 스스로 대처할 지혜와 능력을 갖췄다고 믿는다”며 외세 개입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