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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71] 곰팡이

바람아님 2013. 10. 28. 08:25

(출처-조선일보 2010.08.09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건강을 생각하여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 다닌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나는 워낙 걸음이 빠른 편인데 속보로 거의 정확하게 30분쯤 걸리는 거리를 하루 두 차례 반복하면 아주 훌륭한 운동이 된다. 덕분에 차를 쓸 일이 거의 없어져 저절로 환경 보호에도 나름 기여하고 있다. 다만 요즘 같은 장마철에 모처럼 차를 쓰려고 차문을 열 때 코를 간질이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는 적이 역겹다. 오래된 책을 펼쳤을 때 풍겨 나오는 고양이 오줌 냄새 같은 그 은근한 곰팡이 냄새를 나는 사실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열대 정글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냄새라도 그게 차 안에서 나면 왠지 싫을 뿐이다.

우리 인간도 무더운 여름이면 곰팡이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는데 땅속이나 나무 속에 굴을 파고 사는 벌이나 개미는 오죽하랴. 그런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꿀벌이 개발해낸 화합물이 바로 프로폴리스(propolis)이다. 프로폴리스는 꿀벌이 식물에서 채취한 수지(樹脂·resin)를 밀랍과 혼합하여 만든 것으로 대개 벌통의 빈틈을 메우는 데 쓰인다. 한편 분봉을 할 때 새롭게 둥지를 틀 나무 구멍을 찾으면 한 무리의 일벌들이 먼저 들어가 그 내벽을 얇은 프로폴리스 막으로 도배를 한다.

최근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의 연구진이 프로폴리스로 도배를 한 둥지와 그렇지 않은 둥지에서 태어나 일주일 동안 성장한 벌들을 비교해 보았더니, 프로폴리스의 영향하에 자란 벌들이 상대적으로 면역물질을 적게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프로폴리스의 항균력 덕택에 그들은 일찍부터 면역물질을 만드는 데 영양분을 허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속성 때문에 상당수의 암환자들이 프로폴리스를 항암제로 복용하고 있다.

곰팡이는 효모·버섯과 함께 균류에 속하는 생물로서 온갖 생물의 몸에 기생하며 건강을 해치는 골치 아픈 존재이다. 하지만 개미 중에는 이런 균류의 탁월한 생명력을 역이용해서 아예 그들을 경작하여 먹는 종들이 있다. 중남미 열대우림에 사는 잎꾼개미들은 나뭇잎을 수확하여 그걸 거름 삼아 버섯을 길러 먹는다. 그런가 하면 이런 곤충의 몸에서 자라나오는 동충하초(冬蟲夏草)는 우리 인간이 귀한 약재로 사용한다. 실로 서로 먹고 먹히는 곳이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