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04.10. 01:49
70% 넘는 지지율에 취해 오만과 독선 나타나는 조짐
미 싱크탱크 인사 개입 의혹 코드 다른 전문가 배제 논란
방송법 개정 지연 등은 간과해선 안 될 이상 신호
정권이 바뀌더니 붓끝이 무뎌졌다는 얘기를 종종 듣고 있다. 그때마다 감춘 걸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언제부턴가 글이 매가리가 없고, 변죽만 울리다 만 것처럼 지리멸렬한 꼬락서니다. ‘대기자’ 명부에도 올랐으니 이제 그만 짐을 쌀 때가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 권력의 폐부를 확 찌를 만한 자신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주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4%가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집권 1년을 한 달 앞두고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70%에 근접하는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역대 어느 정부도 누려보지 못한 높은 지지율이다. 오는 27일 있을 남북 정상회담이 무난히 끝나면 지지율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기자란 직업을 가진 사람도 기자이기 이전에 동시대인과 같이 울고 웃는 시민의 한 사람이다. 직업적으로만 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 차라리 좋았다. 적어도 그때는 글에 힘이 있었다.
사실 지지율처럼 덧없는 것도 없다. 잠시 방심하면 민심은 주먹에 움켜쥔 모래알처럼 금세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지지율에 취해 이제 이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가 가장 경계할 순간이다. 과잉 충성분자들이 속삭이는 달콤한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위험 신호다. 내가 항상 옳다는 오만과 독선은 실패의 보증수표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줄기차게 문재인 정부의 뒷다리를 잡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다. 당직자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막말은 국민의 품성과 국어의 품격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논리 중에는 이성과 상식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도 많다. 그렇다고 상대의 그름이 나의 옳음을 증명하는 알리바이는 아니다. 한국당이 헛발질을 할수록 문재인 정부는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SAIS는 국제관계학 분야에서 미국 내 1, 2위를 다투는 대학원이다. 대북 대화론자인 로버트 갈루치 USKI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우호적 여론이 절실한 마당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게 놀랍다. 문재인 정부의 대외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이 우려된다.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 정책을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다. 지원을 하는 정부는 지원을 받는 문화예술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지원한다는 이유로 간섭하기 시작하면 창작 활동의 토대인 예술의 자유가 침해되거나 위축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된 것도 정부 지원을 무기로 예술 활동에 간섭하려 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다른 시각을 지닌 국내 외교안보 분야 국책 연구소 전문가들에게 알게 모르게 사임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소문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망인인 이희호 여사 경호 문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내린 일방적 조치도 안 좋은 조짐이다. 해당 법률 조항에 대한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먼저 받아본 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미망인인 손명순 여사에 대한 예우와 함께 처리하는 게 옳은 순서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일 때 제출한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여당이 됐다고 해서 마냥 미루고 있는 것도 문제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잘해 왔다. 국민의 절대다수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 1주년을 앞두고 나타나고 있는 이상 신호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지가 비판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잘나갈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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