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정옥자 전서울대교수의 저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선비"에 나온는
내용으로 선비정신세계의 골격을 발췌한 것으로,
우리 조상을 폄하 하기에 앞서 그 근본정신을 알아 보자.
조선시대 선비의 삶과 선비정신 鄭 玉 子 (서울대 國史學科)
일반적으로 선비(士)란 조선시대의 지식인으로 이해되고 있다. 선비는 오늘날의 왜소한 지식인과 곧잘 비교된다. 특히 꼿꼿한 지조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 않던 강인한 기개, 옳은 일을 위해서는 賜藥 등 죽음도 불사하던 불요불굴의 정신력, 항상 깨어 있는 청정한 마음가짐으로 특징 지워진 선비상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제시대와 광복 후 현대사의 전개과정 속에서 지식인들이 보여 주었던 체질적 한계와 현실타협적 처신은 전통시대 지식인인 선비와 비교되면서 선비정신에 대한 재조명이 요청되고 있다. 특히 삼십년간 지속된 군사정권 하에서 한국 지식인이 겪은 좌절감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지식인 자신들의 테크노크라트적 성격과 현실안주의 타성에 기인하였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참담한 자기반성의 실마리는 결국 전통시대 지식인상인 선비상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라는 사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시점이다.
조선시대 선비란 신분적으로는 良人이고 경제적으로는 농촌 지방의 中小地主層 出身이 主流이다. 조선의 國學이던 性理學을 주전공으로 하여 그 이념을 실천하는 學人이었다. 士의 단계에서 修己하고 大夫의 단계에서 治人하는 修己治人을 근본으로 삼아 학자관료인 士大夫가 되는 것을 최종목표로 하였다.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는 修己가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만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治人의 단계로 갈 수 있다는 인식이었으므로 修己가 전제되지 않은 治人은 성립될 수 없었다. 또 治人이란 남을 지배한다거나 통치한다는 권력개념보다는 자신을 닦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君子가 되어 民을 위하여 이바지하는 봉사행위로 이해되었다.
그들은 民本主義에 입각한 이상향의 건설을 지향하였다. 그 이상향은 역사적으로 堯舜三代에 이 세상에 실현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였다. 따라서 修己가 제대로 된 선비, 즉 군자가 治人의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은 이미 이상세계를 건설한 바 있는, 그래서 현실세계에 실현가능성이 열려 있는 이상향을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大同社會로 설정되었다. 신분적 경제적 差別性은 완전히 극복될 수 없지만 크게 볼 때 동질성을 추구하는 사회, 함께 어우러져 살며 共生共存을 추구하는 사회를 방향성으로 잡았던 것이다. 현세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사고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향하여 분골쇄신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士大夫였다.
1. 선비의 修己
선비의 전공필수는 文.史.哲 중심의 인문학이었다. 특히 철학에 해당하는 經學이야말로 학문의 핵심이었다. 經學이란 유교경전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를 탐구하는 것으로 성리학의 理氣論을 해명하는 것이 최대과제였다. 우주만물을 바라보는 일관된 기준인 이기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문제는 세계를 이해하는 세계관과 인생관의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우주.자연.인간의 모든 현상은 작용으로서의 氣와 작용의 원리로서의 理에 의하여 일관된 잣대로 생성.변화.소멸한다는 논리였다. 바로 이 理氣論을 기초로 하여 제반 학설이 전개되었고 그러한 학술논쟁에 모든 선비들이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어 있었다.
역사는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형적이므로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수천년 동안 선진문명을 일구었고 동양문화권의 주도국이던 중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 흥망성쇠의 메카니즘과 변화요인에서 삶의 지혜를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 역시 필수로 정리되고 학습되었다. 현재의 삶의 거울로서 역사서는 거울 감(鑑)자를 즐겨 썼다. 經學과 歷史는 [經經緯史]로 이해되었다. 경전의 진리는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날줄인 經으로 이해하고 역사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이므로 씨줄로 이해되었다. 經經緯史의 정신으로 날줄과 씨줄로 짜여져 있는 인간의 삶의 모습을 보다 확실하게 입체적으로 응시하고 탐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파악한 진리나 사실, 사상성 등 알맹이를 표현하는 매체가 바로 문장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나 진리도 그에 합당한 문장력이 없다면 여러 사람에게 알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알맹이도 없는 화려하고 요란한 문체만 난무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문장이란 메시지를 담는 그릇으로 이해되었다. 바로 그 메시지가 진리나 사상 등 道라 표현되고 문장은 그것을 담는 그릇인 器로 이해됨으로서 道器論은 문장론과 經經緯史정신의 상호 보완관계로 설정된 논리틀이다. 결국 경학(철학).역사.문장학은 상호보완의 관계에서만 그 자리매김이 분명해지고 그 역할도 증대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經史를 함께하여 그 교차하는 상호작용을 파악하여 진정한 앎에 도달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여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일 뿐만 아니라, 앎은 삶에 일치시켜야 한다는 知行一致의 정신에 입각하여 경전의 진리를 실천하되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에 조응하여 탄력성있게 대응하려는 삶의 방식으로도 적용되었다. 인문학의 진정한 목표는 삶의 질을 끌어 올려 인간적인 生의 실현에 있었던 것이며, 그것은 文.史.哲의 보합에서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修己에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修身의 문제는 <小學>에 기초를 두었다. 성리학에서 어린아이의 수신교과서로 성립된 이 책은 어려서부터 灑掃.應對.進退之節을 가르치는 행위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쇄소는 청소하는 법, 응대는 말을 예의로 주고받는 법, 진퇴지절은 나아가고 물러가는 예절로서 어려서 몸에 익혀야 자라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나오는 것이다. 16세기 士林이 조선사회에 주도세력화 하면서 어린아이의 수신교과서에 대한 사회적 요구로 중종때에 朴世茂(1487-1564)의 <童蒙先習>이 간행되었고 선조때에 李珥(1536-1584)의 <擊蒙要訣>이 출간되었다. <소학>이 송나라때 이루어진 책이므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조선사회에 구체적으로 실천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조선사회에 적합한 어린이의 수신교과서가 창출된 것이다. 다시 1884년엔 영남유생 朴在馨에 의하여 <海東小學>이 발간되어 소학과 꼭같은 체제와 요목을 채택하였음에도 그 실례와 내용은 거의 조선선비의 學行으로 알차게 꾸며진 공실공히 조선소학이 가능케 되었다.
<동몽선습>은 五倫에 입각한 목차를 만들고 원론에 가까운 실천요목을 내용으로 하여 간결한 반면 <격몽요결>은 앞에 序文을 붙이고 立志章부터 處世章까지 10장으로 구성하는 창의성을 보이고 있다. 선비가 되기 위한 기초수련을 자세하게, 조선현실에 맞게 요약 설명하였다. 그 중에서 몸가짐에 대한 항목인 제3장 持身章의 九容과 九思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九容이란 몸과 마음을 수렴하는데 절실한 아홉가지 항목이다.
첫째, 발모양은 무겁게 할 것(足容重).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다만 어른앞에서 걸을 때는 여기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른앞에서 거드름피우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손모양은 공손히 할 것(手容恭). 손을 아무렇게나 놓지 않고 일이 없을 때는 단정히 손을 모으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셋째, 눈모양은 단정히 할 것(目容端). 눈동자를 안정시켜 마땅히 시선을 바르게 해야 하며 흘겨보거나 훔쳐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넷째, 입모양은 움직이지 말 것(口容止).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입은 항상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다섯째, 소리는 조용히 낼 것(聲容靜). 마땅히 형기를 가다듬어 구역질을 하거나 트림을 하는 따위의 잡소리를 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섯째, 머리모양을 곧게 할 것(頭容直). 머리를 바르게 하고 몸을 곧게 해야 하며 머리를 기울여 돌리거나 치우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곱째, 숨쉬는 모양을 엄숙하게 할 것(氣容肅). 호흡을 고르게 하여 소리를 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덟째, 서 있는 모습을 덕스럽게 할 것(立容德). 가운데 서고 치우치지 않아서 엄연히 덕이 있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홉째, 얼굴모양을 장엄하게 할 것(色容莊). 얼굴빛을 단정히 하여 태만한 기색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상 구용은 신체의 손.발 등 각 부위의 모양을 어떻게 가꾸어야 우아하고 품위있는 선비가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어 일거수 일투족을 빈틈없이 규정하고 있다.
九思란 지혜를 더하기 위한 구체적인 아홉가지 실천요목이다.
첫째,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할 것(視思明). 사물을 볼 때 가리운 바가 없으면 밝아서 보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둘째, 들을 때는 귀밝게 들을 것을 생각할 것(聽思聰). 들을 때 막힌 바가 없으면 귀밝아서 듣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셋째,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할 것(色思溫). 얼굴빛을 온화하고 부드럽게 하여 화를 내거나 거친 기색이 없도록 할 것이다.
넷째, 모습은 공손히 할 것을 생각할 것(貌思恭). 일신의 태도가 단정하고 씩씩하게 할 것이다.
다섯째, 말은 충실하게 할 것을 생각할 것(言思忠). 한마디 말이라도 충신치 않음이 없도록 한다.
여섯째, 일은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할 것(事思敬). 한가지 일이라도 경건하고 삼가지 않음이 없도록 할 것이다.
일곱째, 의심나는 것은 물을 것을 생각할 것(疑思問). 마음속에 의심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깨달은 이에게 나아가 자세히 물어보아 모르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덟째, 분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할 것(忿思難). 분이 나면 반드시 징계하고 이치를 따져서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아홉째, 얻을 일이 있으면 옳은지 생각할 것(見得思義). 재물에 대해서는 반드시 義인가 利인가 분변하여 義에 맞는다고 판단한 후에야 갖는다.
구사란 사물을 관찰하고 행동할 때 그 전제로서 한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일상사를 자세하게 규정하였다. 결론적으로 구용과 구사는 마음속에 두고 몸을 단속하여 잠시라도 놓아 버려서는 안되며 항상 앉는 좌석옆에 써놓고 때때로 눈을 돌려보아야 하는 修身의 기초 조항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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