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15년 04월 13일)
우리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기를
바란다. 길 가는 사람을 잡고서 “전쟁을 바라느냐
평화를 바라느냐?”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평화를 바란다고 대답할 것이다.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없는 것이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묵자는 인류사에서 “어떻게 하면 침략 전쟁을
없앨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가장 진지하게
고민한 사상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나와 남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적대적 대립’에서 찾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세력을 응징하는 국제연합과
같은 역할을 실제로 수행했다.
즉 그는 말로만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면 그것에 상응하는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묵자가 전쟁을 없애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여정을 따라가 보자. 오늘날 중국 전도를 보면 주(周)나라, 진나라, 한나라는
모두 시안(西安), 즉 서쪽으로 치우진 곳에 수도를 세웠다. 주나라 천자(天子)는 동쪽에서 변란이 일어나면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걱정했다. 이 때문에 주나라는 140여명의 왕족과 건국 공신들을 군사적, 정치적 요충지에 공·후·백·자·남
(公侯伯子男)의 제후(諸侯)로 세웠다. 그들은 유사시에 외적이 주나라 천자를 공격하지 못하게 중도에서 막는 울타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제후들은 애초 목적과 달리 각자 자국의 영토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됐다.
그 결과 140여개 나라는 강한 나라의 공격을 받아 망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 ‘자기 보존’의 과제를 풀어야 했다.
자기 보존의 욕망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르면 7대 강국만이 살아남게 된다.
이들을 옛날에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했는데 요즘 말로 하면 중원지역의 ‘G7’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를 일컫는 전국시대는 ‘전국책(戰國策)’이란 책 이름에서 연유했지만 그 자체는 ‘싸우는 나라들의 시대’라는 뜻이다.
통계자료로 살펴보면 춘추시대(기원전 722~464년)에는 1년에 약 5개국이 서로 전쟁을 벌였고, ‘좌씨전(左氏傳)’의 기사(기원전
722~468년)에는 전쟁이 모두 531회, 즉 연평균 2회 이상 발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사람다움의 발견’ 115쪽, 신정근)
전쟁이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요소로 대두되면서 그 비중은 나날이 늘어났다. 급기야는 전쟁 만능론까지 제기됐다.
상앙은 이를 ‘전쟁으로 전쟁을 끝장낸다’는 ‘이전식전(以戰息戰)’으로 표현했다.
이 때문에 전략을 짜고 군사를 지휘하는 병가나 외국과 협상을 하는 종횡가는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됐다.
묵자의 생각은 상앙과 같은 전쟁 만능론자와 달랐다.
그는 전쟁을 비롯한 적대적 경쟁이 자기 보존을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끊임없는 불신과 혼란을 낳을 뿐이라고 봤다.
상앙이 생각하기에 묵자의 주장은 잠꼬대 같은 소리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묵자도 상앙의 반론에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이 한 번의 승리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완전한 승리를 가져올 수는 없다.
결국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끊임없는 전쟁의 악순환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묵자는 상호 적대적인 대립에 바탕을 둔 전쟁 만능론자의 전제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그는 ‘나와 남을 동등하게 대우하자!’는 ‘위피유위기(爲彼猶爲己)’에 바탕을 둔 겸애(兼愛)를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는 “겸애가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묵자의 말을 일단 믿고 겸애가 과연 전쟁 억지로 이어질 수 있는지,
다시 그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묵자가 아무리 겸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해도 현실에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에 따라 여전히 전쟁이라는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약속을 하면 지키는 사람이 있지만 꼭 어기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묵자의 고민이 시작됐다. 그는 전쟁의 폐해와 허구성을 밝히면 사람들이 전쟁이 아닌 다른 길, 즉 평화에 이르는
겸애를 선택할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평화의 세계를 만들려면 겸애만으로는 부족하다.
묵자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맹렬하게 비판했는데 그것이 바로 침략 전쟁을 반대한다는 ‘비공(非攻)’이다.
그러나 비공(非攻)도 겸애(兼愛)와 똑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겸애에 반하는 침략 전쟁을 아무리 비판한다 하더라도
현실의 지도자는 묵자와 달리 여전히 선제와 기습의 전쟁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쟁의 폐해를 알지만 생존을 위해서 전쟁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전쟁을 결코 없앨 수 없는 것일까. 묵자는 오로지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관성을 멈추거나
침략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신과 불안을 잠재우지 않으면 전쟁은 결코 없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묵자는 실로 담대한 기획을 했다. 그는 전쟁은 그것의 부당성을 앞세우는 것만으로 억제될 수 없으니, ‘전쟁을 일으키면
결코 이익을 얻지 못하고 결국 패배를 당해 큰 손실을 입게 된다’는 경험에 의해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묵자는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를 풀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전쟁을 일으킨 나라를 응징하거나 침략을 받는 나라를 군사적으로 직접 도와서 패배를 막아내는 일이었다.
말과 논리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힘과 행동의 영역에 뛰어든 것이다.
이것은 전쟁의 폐해를 원론적으로 비판했던 노자(老子) 등과 다른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묵자는 자신의 이론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 현실을 규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군사 집단이 됐다.
이런 시도는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실로 획기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말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몸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이었다.
‘묵협(墨俠)’은 묵자가 이론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현실 세계에 직접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성향을 나타내는
말이다.이것은 묵자가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 집단의 특성에 한정되지 않고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 무기를 쓰는 용병,
군사 조직을 운용하는 지도자를 포함하는 ‘자발적 결사체(Voluntary Association)’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그들은 시대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전위부대(Vanguard)기도 했다.
역사적인 실례가 있다. 남쪽의 강한 초나라가 중원의 약한 송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초나라는 당시 묵자 집단과 함께 성을 공격하는 공성(攻城)과 성을 지키는 수성(守城)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진
공수반(公輸般)의 실력을 믿고 있었다. 공수반은 성 밖에서 큰 돌을 성벽이나 성안으로 던져서 공격하는 운제(雲梯)를
제작해 송나라의 성을 깨뜨리려고 했다. 만약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송나라가 질 것이 뻔했다.
하지만 초나라의 국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누구 하나 나서서 송나라 침략이 부당하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이미 전쟁은 국제 관계에서 한 나라의 이해를 추구하는 선택지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누가 “당신은 왜 전쟁을 일으켜서 다른 나라를 괴롭히느냐?”라고 물으면 “너도 힘이 있으면 전쟁을 일으켜서
한몫을 잡으면 될 게 아닌가?”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시대였다.
묵자는 열흘 밤낮을 걸어서 초나라에 도착했다.
그는 초나라 혜왕을 만나 전쟁을 만류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묵자는 혜왕이 보는 앞에서 공수반의 운제에 대항하는 수성의 전술을 펼쳤다.
공수반이 공격할 때마다 묵자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이때 공수반은 묵자를 죽이면 송나라를 깨뜨릴 수 있다며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하지만 묵자는 자신의 동료가 송나라에서 초나라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다면서 자신을 죽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런 묵자의 노력을 통해 초나라는 송나라 공격을 멈추게 된다. 이것은 묵자가 당시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말과 행동,
이론과 실천의 통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웅변하듯 보여준다.
우리 시대에도 시대의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 주장이 단지 말만 번지르르하지 않고 실제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이를 판정하려면 이론이 현실을 만나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경로가 명확하게 제시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장은 잠깐 주목을 받다가 금세 사라지는 소음일 뿐이다.
묵자처럼 현실과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이론을 내놓는다면, 이론은 현실을 이끌어가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 일러스트 : 정윤정]
[영화] 묵공(墨攻)
바야흐로 다른 나라로부터 침략당하는 나라들을 구원하며 그 성을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들어내는 수수께끼에 휩싸인 묵자 교단. 이 소설은 묵자 교단의 사상을 베이스로 염두에 두면서 펼쳐지고 있다. '전국시대'와 '묵가'라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가상의 인물인 혁리라는 주인공의 활약과 고뇌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
[신정근의 동양철학 톺아보기] 묵자(墨子) |
(5) 묵자가 문화예술을 반대한 까닭은? (4) ‘전쟁 반대’ 말보단 행동으로 실천 (3) 경쟁에서 협력으로…‘兼以易別(편가름을 아우름으로 바꾸다)’ 강조 (1) 타인도 나를 돌보듯…‘兼愛(겸애)’의 사상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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