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8.08.22. 12:06
지금은 '지역 절멸종'인 참쉬리와 꺽저기 표본 확인
고 최기철 박사 기증 표본 37만점 정리하다 '발견'
생물학자들은 기록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을 대개 야외에서 현장조사를 하면서 발견한다. 그러나 종종 이미 채집됐지만, 의미를 모른 채 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표본 가운데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한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고 최기철 서울대 명예교수가 기증한 어류 표본을 정리하던 홍양기 박사팀도 그런 발견을 했다.
우리나라 민물고기 연구와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최기철 박사는 1990년 평생 전국에서 수집한 민물고기 표본 37만여점을 국립중앙과학관에 기증했다. 홍 박사팀은 이번에 과학기술자료 표준관리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면서,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최 박사의 기증 표본 가운데 특별한 것들을 발견하게 됐다. 바로 거제도의 참쉬리와 꺽저기 표본이다.
참쉬리는 남해로 흐르는 하천의 중·상류 여울에 분포하는 한국고유종 민물고기이다(애초 최 박사가 채집한 것은 쉬리였지만 2015년 서해로 흐르는 물줄기에 사는 쉬리와 남해 수계의 참쉬리로 종이 구분됐다. ▶관련 기사: 소백산맥 생기면서 분화한 신종 참쉬리 확인).
거제도의 참쉬리가 중요한 까닭은 과거 빙하기 때 거제도가 육지와 연결됐다는 생물학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홍 박사는 “섬 하천의 여건상 참쉬리가 살기는 힘들지만, 거제도는 과거부터 분포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거제도의 참쉬리는 1997년 손영목 서원대 명예교수가 한 마리를 채집한 것을 끝으로 지역적으로 절멸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참쉬리가 사는 섬은 남해도밖에 없다. 쉬리와 참쉬리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1속 1종의 어류이며, 한반도에서 살아온 역사가 가장 긴 민물고기의 하나로 꼽힌다.
거제도의 꺽저기도 참쉬리 못지않게 학술적으로 중요한 종이다. 꺽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이 물고기는 애초 탐진강과 인근 수역, 낙동강, 거제도 일부 하천에 분포했지만, 현재는 탐진강과 인접 하천을 빼고는 모두 사라졌다. 이 물고기는 일본 서남부에도 분포해, 빙하기 해수면이 낮아졌을 때 한반도 남부와 일본 서남부가 육지로 연결됐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거제도의 꺽저기는 1997년 조사 때 한 마리가 채집된 것을 끝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홍 박사는 “거제도의 참쉬리와 꺽저기는 육지와 분리돼 고립된 이후 독자적인 진화를 거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포르말린 표본이어서 유전자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표본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유전적 변화를 확인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배태민 국립중앙과학관 관장은 “지역 절멸종 표본이 과학관 수장고에서 발견됐음은 생물표본이 교육과 전시는 물론 연구에도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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