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8.30 민학수 논설위원·스포츠부 차장)
머리카락 없는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머리카락 얘기라고 한다. 무골호인도 화를 낸다고 할 정도다.
박항서도 일찍부터 머리카락이 없었다. 2001년 히딩크가 이끌던 월드컵 대표팀 코치 박항서는 40대 초반이었다.
그의 지인 몇 명과 함께 밥 먹으러 간 자리였다.
자리가 이어지면서 누군가 그만 '보름달 코치'라고 머리카락 얘기를 하고 말았다.
좌중에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그는 "괜찮아요 뭐, 머리 일찍 빠지는 사람도 있는 거지"하고 넘겼다.
그러고는 곧바로 "한국 축구는 체력은 좋은데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히딩크 감독님이 정반대로 얘기해서
정말 놀랐다"고 했다. 박항서는 축구에 대한 열의가 정말 큰 사람이었다.
▶그는 히딩크가 한국 선수들 특유의 위계질서를 허물고 매정하게 굴 때면 황선홍, 홍명보 등 노장들을 다독이던
'큰 형님'이었다. 선수들과 장난치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도 친근감을 주었다.
2002년 월드컵 때 황선홍이 첫 골을 넣고는 히딩크 아닌 그의 품으로 달려간 장면은 팬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하지만 2002년 10월10일 밤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4강전은 감독 박항서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한국은 이란과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이란에 무릎을 꿇었다.
당시 축구협회 관계자들은 "승부차기 모습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배짱으로 어떻게 대표팀 감독이 되겠느냐"고 했다.
히딩크를 이어 대표팀 감독 0순위였던 그는 아시안게임과 함께 경질됐고 다시는 대표팀과 연을 맺지 못했다.
대표 선수 출신이지만 그는 축구계의 주류가 아니었다.
▶베트남에서 소녀들에게 송중기, 이민호, 김범 등 한류 스타들과 박 감독 중에 누가 더 좋으냐고 물으면
예외없이 박 감독을 좋아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의 모습이 새겨진 티셔츠가 베트남 청소년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따뜻하면서도 속이 꽉 찬 박항서를 통해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 좋다.
▶그가 선수들에게 "우리는 베트남이다"고 외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는 축구를 통해 베트남 사람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한국에서 내쫓기듯 밀려날 때 그는 '한국만 아니면 된다'며 영문 이력서를 꾸며 베트남으로 갔다.
내년이면 환갑이 되는 그를 TV에서 보니 다시 청년이 된 것 같다.
그의 성공을 보면서 사람을 진득하게 키우지 못하고 너무 쉽게 내치는 우리 모습도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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