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8.28. 03:15
공직자가 자리값 못하면 정권 바뀐 뒤 치르는 건 '죗값'
어렸을 때 집에 일꾼이 오면 무거운 짐을 다 옮긴 뒤에도 그는 "더 할 일 없소?" 하고 팔을 걷었다. "이제 그만 됐다"는 어머니에게 일꾼은 말했다. "아이고 밥값은 해야지요."
새참 때가 되면 어머니는 일꾼에게 거한 상을 차려놓고, "간도 못 봤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소. 시장기나 속여두시오"라고 했다. 사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이미 간을 보셨는데, 고봉밥을 내밀며 시장기나 속여두라는 건, 어머니의 눙치시는 겸양이자 해학이셨고, 일꾼은 밥값이나 했는지를 거듭 걱정했다.
서로 웃는 낯이었지만 '밥값'의 뜻은 삼엄했다. 무릇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받은 만큼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의 도리로 알았다. 건네받은 품삯을 구태여 밥값이라 부르는 속뜻도 깊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일을 크게 그르치는 사람을 볼 때도 "아이고 밥값 하고 있네" 하면서 타박을 놓으셨다. 사람은 응당 밥값을 해야 하지만, 일솜씨가 너무 과하거나 못 미치면, 그 밥값이 욕먹는 말이 되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 사회에 나와 보니, 밥값 말고도 '이름값'과 '얼굴값'이 중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조직에서, 다들 크고 작은 이름을 내걸고 살았다. 자신이 잘나서 세운 이름은 일부분이고, 대부분 주변에서 거들고 대접해줘서 생긴 이름이다. 그래서 '이름값'을 치러야 하는 사람은 '그들'이 아닌 '나'였던 셈이다.
'얼굴값'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이름값에 따라다녔다. 이름값이 얼굴값이고 얼굴값이 이름값이었다. 간혹 어머니께서는 훤칠하게 생긴 사람이 몹쓸 짓에 연루되면, "아이고, 반반한 얼굴값 하느라 저러는 것 같다"고 하셨다. 밥값이 때로 욕먹는 말인 것처럼, 얼굴값도 죽비가 되어 등짝을 내려치는 말이 되기도 했다.
요즘 사회 지도층, 고위 공직자, 유명 인사들을 보면서 그들의 '밥값'과 그들의 '이름값'을 떠올린다. 밥값을 하려면, 그 자리에 앉혀준 임명권자가 지시한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할 것이다. 그게 밥값이다. 그러나 이름값을 하려면, 임명권자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의 기대치에도 부응해야 한다. 밥값은 기본 필수요, 이름값은 그 너머 알파요 명예라고 할 수 있다.
'밥값'의 의무감과 '이름값'의 양심이 충돌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밀고 나가는 것이 밥값이라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소신을 밝히는 것은 전문가로 평생을 살아온 책무요 이름값일 수도 있다. 이걸 조화롭게 해결하는 정답이 '자리값'이다. 역설적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직(職)을 걸라"는 게 바로 이거다. 특정 정치적 견해를 가진 어떤 사람들로부터 "밥값도 못한다"는 소릴 듣든 말든, "얼굴값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든 말든, 오로지 나라의 앞날을 위해 할 일 하는 게 바로 "자리값을 한다"는 것이다. 쉽지 않다. 소태를 씹듯 고통스러울 수 있다.
공직을 맡아 자리값을 못하면 "꼴값 떤다"는 소리를 듣다가 종당에는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된다. 아니, 그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라, 정권 바뀐 뒤에 '죗값'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그동안 많이 봤듯이 자리값 못하면 시간이 흐른 뒤 다음 정권이 반드시 죗값을 묻는다. 지게꾼에겐 밥값을 하는 게 그의 성실이라면, 고위 공직자는 자리값을 하는 게 그의 성실이다.
자리값 해내고 은퇴한 뒤에는 마지막 단계가 찾아온다. 옛 어르신들은 인생 다 살아놓고 보니 이 값 저 값 중에 '나잇값'이 제일 어렵더라고 했다. 나잇값이 삶의 품위를 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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