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9.26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동독 주민들, 섹스숍에서 돈 쓰고 자동차부터 교체
욕망에 노출되면 北 체제 버틸 수 있을까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나름 화가
1. 한때, 베를린의 밤은 한국 유학생들이 지켰다.
독일 통일 몇 해 전부터 베를린의 한 경비 용역 회사는 한국 유학생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한국 유학생들은 참으로 듬직했다. 대부분 3년 가까운 군대 생활을 경험한 까닭이다.
유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야간 경비원은 훌륭한 아르바이트였다.
읽어야 할 책을 잔뜩 싸들고 경비실에 앉아 밤새워 공부하다 오면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수년 동안 그 회사 소속이었다. 1989년,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을 단행하면서 동구권 나라들은
서방 세계와의 국경을 열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동독 주민들은 느슨해진 이웃 나라 국경을 통해 서독으로 탈출했다.
서독 정부는 서둘러 난민 수용소를 곳곳에 설치했다. 서베를린 슈판다우 지역 공터에도 대규모 난민 수용소가 설치되었다.
1989년 11월 9일 늦은 밤이었다. 갑자기 내가 지키던 수용소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동독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수용소 문을 열라고 나를 협박했다. 내가 버티자,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자기 권총을 꺼내 나를 겨눴다.
나는 열쇠 꾸러미를 그에게 던져주고 바로 도망쳤다.
비겁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독일에서 야간 경비하다가 총 맞아 죽을 일은 결코 아니었다.
2. 너무 늦게 오면 벌 받는다!
1989년 10월 7일,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행사가 동베를린에서 열렸다.
동베를린을 방문한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호네커에게 '너무 늦게 오면 벌 받는다(Wer zu spät kommt, den bestraft
das Leben)'고 경고했다. 그러나 호네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전부터 동베를린 중심가에서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다. 무지하게 큰 키의 동독 병사들이 무릎을 쭉쭉 뻗으며
행진했다. 호네커의 군대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도시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그들은 고르바초프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를 외쳤다.
동독 사회주의의 주인은 호네커가 아니라 '인민'이라는 거다. (그때 그 폼 나던 동독 병사들은 통일 이후, 한국인 유학생들의
경비원 아르바이트를 죄다 빼앗았다. 그들은 한국 유학생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서독 건물의 경비원이 되었다.)
자본주의적 욕망은 불패(不敗)다! /그림=김정운
3. '즉시(sofort)' '바로(unverzüglich)'.
1989년 11월 9일 저녁, 동독 공산당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는 여행 자유화에 관한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다.
별 내용은 없었다. 곧 여행 자유화를 하겠다는 발표문을 읽어나가던 그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당황한 샤보브스키는 발표문을 들척이다가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즉시!' '바로!' 기자는 급하게 신문사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전했다.
뉴스를 접한 동독 주민들은 바로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나왔다. 국경수비대는 어쩔 줄 몰랐다.
그날 밤, 동독 주민 수만 명이 서베를린으로 몰려나갔다. 그들 중 일부가 먼저 탈출한 가족을 만나러 내가 지키던
난민 수용소로 몰려왔던 것이다. 그들은 밤새도록 '우리는 한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를 외쳤다.
'우리는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와는 관사(冠詞) 하나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뜻은 전혀 다르다. (이 '황당한 독일 통일'에 관해 나는 귀국 후 사방에 알렸다. 다들 웃어넘길 뿐이었다.
10년 전, 미국의 한 신문이 이에 관해 자세하게 보도했다.
이후 한국의 신문 방송에서도 비로소 진지하게 이 내용을 다루기 시작했다. 젠장! 매번 이런 식이다.)
4. 섹스숍과 자동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서독 정부는 모든 동독 사람에게 '환영금(Begrüßungsgeld)'을 100마르크(약 5만원)씩 지급했다.
그들은 서독의 백화점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100마르크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섹스숍에서 그 돈을 탕진했다. 남녀 간의 가장 은밀한 행위까지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위력 앞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의 화폐 통합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거의 1대1의 통합이었다.
뜻밖의 목돈이 생긴 동독 사람들은 자동차를 가장 먼저 바꿨다. 그들은 1957년 이후로 한 번도 모델이 바뀐 적 없는
'트라비'라는 자동차를 타고 있었다. 2기통에 아무리 밟아도 겨우 시속 100㎞였다. 매연도 엄청났다.
서독의 자동차들은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동독의 냄새나는 '트라비'를 비웃었다.
모멸감에 젖어 있던 동독 주민들이 자동차부터 바꾼 것은 당연했다.
'사회주의적 계몽'은 '자본주의적 욕망'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5. 통일은 심리학이다.
독일 유학 초기, 난 독일이 통일될 것 같으냐고 독일인들에게 수시로 물어봤다.
정신 나간 네오나치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통일이 될 거라고 답하지 않았다. 수십 년 걸릴 거라고도 했고, 아예 독일의
과거 때문에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욕망 체계에 한번 노출된 동독 주민들은 결코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않았다. 인내심도 없었다. 가장 모범적인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의 인민'이 '독일 민족'으로 바뀌는 데는
한 달이 채 안 걸렸다. 현재,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하여 문재인 정부의 노력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잘 풀려나가길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비핵화와 통일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남북한의 경제협력이 전향적으로 발전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에 관한 모든 정보가 개방되었을 때, 과연 김정은 체제가
버틸 수 있겠느냐는 거다. 북한의 '인민'이 과연 기다려 줄 거냐는 이야기다.
현재의 남북한 교류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변인(變因)인 북한의 '인민'은 쏙 빠져 있다. 아, 이건 치명적이다.
별 고민 없이 거론되는 베트남식, 중국식 개혁 개방은 결코 대안이 아니다.
'동네 형'이 잘사는 것과 '우리 형'이 잘사는 것은 질적으로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매번 추석이면 겪지 않는가? 통일은 정치,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통일은 심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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