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11.06. 00:12
문 대통령 선의 믿지만
꿈을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실력과 현실감각 뒷받침 안 되면
뜬구름 잡는 탁상공론일 뿐
그는 “당장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경제적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책 기조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함께 잘살기 위한 정책 기조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올해보다 거의 10% 늘어난 470조5000억원의 새해 예산이 투입되면 J노믹스의 성과가 본격화할 터이니 그때까지 정부를 믿고 기다려 달라는 얘기다.
J노믹스의 중심축인 소득주도 성장은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을 늘려주면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 증대는 기업의 생산과 투자 증대 및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 경제성장이 촉진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실질소득 증대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각종 지원책을 통해 막대한 돈을 풀었다. 하지만 아직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과 문을 닫는 자영업자와 영세 상공업자가 속출하고 있을 뿐이다.
문화일보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 10명 중 4명은 1년 전보다 경제 형편이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나아졌다는 응답은 10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생활 형편이 나빠진 계층은 월 가구소득 200만원 이하 저소득층에 집중된 반면, 나아진 계층은 5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에 몰렸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 효과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양극화만 심화하고 있는 꼴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 구호였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이 요즘처럼 피부에 와 닿은 적도 드물다. 대북정책에서 점수를 따도 경제가 죽을 쑤면 별무소용이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주 55%로 떨어졌다. 평양 방문의 반짝 효과가 사라지면서 3주 새 10%포인트가 빠졌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동시 교체 카드는 분위기 쇄신을 통해 지지율 반등을 꾀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일점일획 바꿀 수 없는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정책은 세상에 없다. 가다 아니면 멈춰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을 더 밀어붙이기 전에 저소득층을 위한 재정 지원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중간에 새는 게 너무 많다. 혁신성장을 논하기 전에 기업들의 기부터 살려줘야 한다. 기업인 모두를 범죄자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누가 일할 마음이 날까. 공정경제를 말하려면 칼자루를 쥔 정부부터 자신에게 엄정해야 한다. 비효율과 비정상을 바로잡는 일에 관한 한 전권을 주고, 경제부총리든 정책실장이든 모셔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국민 한 사람도 차별받지 않는 ‘포용 국가’를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잘못이 있든 없든 지난 정부와 관련된 사람은 모두 적폐로 모는 분위기다. 포용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배제와 청산의 칼이 난무하고 있다. 모든 과거에는 그림자도 있고, 빛도 있다. 과거는 다 없던 것으로 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하겠다는 것은 오만이고 독선이다. 역사적으로 진보가 실패한 주된 이유다.
박근혜 정부를 ‘청와대 정부’라고 욕했던 문재인 정부 스스로 박근혜 정부를 닮아가고 있다. 청와대가 국정을 틀어쥐고 당과 정부 위에 군림하고 있다. 지금 청와대에 있는 참모들 대다수가 이념만 있지 실력과 경험이 부족하다. 그럴수록 쓸데없는 아집에 사로잡히기 쉽다. 집권 1년 차까지는 감동적인 수사(修辭)와 현란한 쇼로 넘어갈 수 있지만,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는 집권 2년 차부터는 다르다.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선의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선의는 이상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될 때 의미가 있다. 실력과 현실감각이 뒷받침되지 않은 선의는 뜬구름 잡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선의는 무능의 면죄부가 아니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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