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2.24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택시가 승객 골라태우는 심야에 승차 공유 '타다'는 정시 도착
전 지구적 기술 파괴의 시대… 고통스럽지만 혁신 계속해야
어수웅 주말뉴스부장
다섯 번을 거푸 외면당했다.
자정 넘어 밤 1시 50분. 신문사 야근을 마친 뒤 집에 가려고 부른 카카오 택시의 호출 실패 횟수다.
일반 택시도, 모범택시도, 추가 요금을 지불하는 업무 택시 콜도 예외 없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호출지는 광화문, 행선지는 독립문. 택시 기사가 콜을 선택하는 현 시스템에서 이렇게 짧은 거리는 매력이 없는 것이다.
평소였다면 차라리 걸었겠지만 이날의 최저기온은 영하 10도. 그 순간 새로운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가 떠올랐다.
차량 공유 서비스인 '쏘카'를 운영하고 있는 이재웅 대표가 두 달 전 추가로 시작한 스타트업.
스마트폰 앱을 열어 차량을 호출했더니 바로 메시지가 떴다. '약 5분 뒤 차량이 도착합니다.'
도착한 기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짧은 거리라서 미안합니다." 그가 웃는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일한 시간만큼 고정 급여를 받아요. 가까운 데 간다고 월급 적게 주는 거 아닙니다."
한 번 더 물었다. "그래도 멀리 가는 승객이 좋지 않나요?"
그의 대답. "저희가 선택하는 게 아닙니다. 호출한 승객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차량을 회사 컴퓨터가 강제 배차하죠."
그 사이 독립문에 도착했다. 요금은 4500원. 일반 택시도 심야 할증 붙으면 5000원가량 나오는 거리다.
거리·시간대에 따라 다르지만, 탄력 요금제를 적용하는 '타다'는 보통 일반 택시보다 20% 정도 비싸다고 알려져 있다.
꽤 오래전부터 신문사는 야간 근무자 복지의 일환으로 택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살거나 거리가 좀 있더라도 빈 차로 돌아 나와야 하는 동네에 거주하는 야근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모범택시 등으로 이용 범위를 확대하며 개선책을 내놨지만, 택시 기사는 독립문을 선택하지 않았다.
택시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시간당 얼마를 벌 수 있느냐가 관건인 현재의 시스템에서
기사들 역시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백약이 무효였던 이 과제를 해결한 게 '타다'였다.
이들 역시 후배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겠지만 시장의 혁신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주 이재웅 대표가 사퇴했다.
'쏘카'나 '타다'에서 사임한 게 아니라 이 정부에서 맡았던 혁신성장본부 민간 본부장직을 4개월 만에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기업에서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사퇴의 변을 마무리한 뒤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삽화가 있다.
잡지 뉴요커의 삽화가로 이름난 A 바콜의 작품.
이 한 줄이 적혀 있다. '당신의 제안은 혁신적이지만, 난 실패하더라도 현재의 절차가 더 편하다.'
전 지구 차원에서 전례 없는 기술적·경제적 파괴가 벌어지는 시대, 정부의 임무는 혁신의 저지가 아니라
혁신의 후원이어야 한다. 동네 카페의 혁신은 스타벅스를 이겨보려는 마음에서 시작하지 스타벅스의 신규 출점을
막아달라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비싸다고 외면하던 편의점으로 소비자를 이끈 혁신 상품은
정부가 이달 초 18년 만에 부활시킨 '가까운 거리 편의점 출점 제한' 규약이 아니라 동네 수퍼마켓에서는 볼 수 없었던
4캔 1만원의 수입 맥주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1+1 특별 상품들이었다.
고통스럽지만 시장의 모든 존재에게 혁신은 숙명이다.
택시 기사도, 편의점 주인도, 그리고 기자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단,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혁신의 희생양은 직업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것.
혁신을 통해 거둔 이익으로 혁신으로 피해 보는 사람들을 챙기는 정부는 기본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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