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언 재일 한국인 음악가
도쿄서 살다가 지방으로 이주
산 중턱 별장지대에 거처 마련
사람 없어 무섭지 않냐 묻지만
몰두할 수 있는 공간·시간 확보
도시가 주는 편리함 버리고 나서
시골서 자연과 공존 가치 깨달아
1960년에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난 나는 재일교포인 제주 출신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 어머니를 두고 있으니, 이른바 재일교포 2세다.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온 아버지는 어려운 가운데 친척의 도움을 받아 노력한 끝에 의사가 됐다. 이후 일본 사회에 공헌하면서도, 모국 시절 기억과 애정이 넘쳐 모국어와 문화를 배우도록 학교를 짓거나 무료 진료를 하는 등 헌신적으로 살아오셨다. 이미 3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남긴, 인생의 지침이라 할 수도 있는 그것은 ‘공존(共存)’이다. 젊은 내게는 전혀 느낌이 없는 말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에는 인생의 나침반이 되고 있다. 아버지의 시대와는 다른,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느끼는 여러 가지 형태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그 첫 회인 오늘의 주제는 ‘자연과의 공존’이다. 지금은 쉰아홉 살이지만, 마흔 살까지는 도쿄에서 살다가 나가노(長野)현의 가루이자와(輕井澤)로 옮겨와 살고 있다. 이곳은 해발 1000m의 고원지대로 산림이 우거져 도쿄보다 평균기온이 10도쯤 낮다. 도쿄에서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으로 1시간10분 정도 거리기 때문에 이곳에서 도쿄로 통근하는 사람도 꽤 많다. 그러나 나처럼 아예 정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주로 정보기술(IT) 관련 업무 종사자나 디자이너, 작곡가, 각본가 등 이른바 크리에이터들, 특히 작가가 많은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은 전차 역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산 중턱의 별장지대다. 산 전체에 약 100m 간격으로 별장들이 흩어져 있지만, 대개 여름에만 사람들이 찾는다. 가장 가까운 ‘정착민’ 별장은 우리 집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별장을 개축해 녹음실과 작곡 공간을 만들고, 이웃에 신경 쓰지 않고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바로 이게 포인트다. ‘주위에 신경 쓰지 않고 몰두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손에 넣는 것’이 내겐 자연과의 공존이다.
창작할 때, 음악으로 스튜디오를 가득 채우고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잠시 환경을 바꾸는 게 최상책이다. 도심보다 산소가 많아 바깥 공기를 쐬면서 몸을 움직이면 체내 순환이 활발해져 난제나 현안도 술술 풀리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한겨울이다. 눈으로 덮인 하얀 대지는 진공상태처럼 느껴지고, 영하의 추운 날씨라도 대기가 깨끗한 날이 많아 이곳 겨울만의 전방위적 파노라마 뷰가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밖으로 나가 심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컨디션이 회복돼 작품 활동에 빠져들 수 있다. 여기서 이렇게 음악 활동을 하면서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도쿄에 있을 때보다 시간 활용법이나 집중력은 월등히 높아졌고, 그만큼 작품의 완성도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얼마 전 찾아왔던 국영 방송의 다큐멘터리 제작팀처럼 도시에서 오는 사람들은 “사람이 없는 곳에 사는데 무섭지 않나요?” 하고 물어온다. 사람이 없을 리 있나. 비록 300m 정도 떨어진 곳이긴 해도 이웃이 있다. 오히려 최근에는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가까운 쪽이 나는 훨씬 더 무섭다. 내가 꺼리는 것은 만원 전차다. 정말 무서워서 과호흡증후군에 걸릴 것만 같다.
그렇다고 산중에 틀어박혀 신선 같은 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도 매일같이 한국과 일본의 주요 현안을 온라인으로 스태프와 실시간 협의한다. 그러면서 실제 작곡·제작·연주·녹음은 여기서 하는데, 도심에서 녹음이나 회의를 하기도 한다. 확실한 거처만 있다면 런던이나 서울, 어디든 자유롭게 가면 된다.
여기로 이주한 직후인 2001년쯤, KBS 스페셜 다큐멘터리 ‘도자기’의 음악을 담당했다. 당시에는 인터넷을 통한 데이터 송수신이 활발하지 않아 시간을 허비하는 게 큰일이었다. 쓸데없이 시간이 걸려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웠는데, 그럴 시간이나 여유는 없었다. 단적인 예로, 방송 불과 며칠 전에 편집 영상을 받아 그것을 보고 곡을 만들어 도심의 스튜디오에서 하나하나 녹음하다간 절대로 제시간에 못 맞춘다.
그렇다면 음악을 이 스튜디오에서 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을 익히는 게 필수 아니겠는가. 이는 작곡과 연주 분야 외의 기술적인 문제로, 본격적인 스튜디오 장비를 갖추고 녹음 기술도 배워 작업에 몰두하기로 했다. 솔로 앨범 ‘에코스(ECHOES)’를 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런던·도쿄·서울의 녹음 자료를 모두 이곳으로 가져와 최종 편집까지 끝낼 수 있게 됐다. 이후 KBS 스페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茶馬古道)’, 엔씨소프트(NCSOFT)의 온라인게임 ‘아이온(AION)’을 비롯해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 제작까지 거의 모두 이 산속에서 끝냈다. 이처럼 오랫동안 쌓은 경험과 개인적 기법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게 나만의 컬러를 내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도심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좋아한다. 40년씩이나 도심에서 쭉 생활해 왔다. 세련되고 매우 편리하고,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빼어난 도심의 환경, 그 스피드에 몸을 맡기고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쾌감까지 느낀다. 재밌을 것 같은 프로젝트 회의 등 정말로 가슴 두근거리는 일들이 있으며, 나도 항상 도심에서 콘서트를 하고 있다. 그러나 도심에 오래 있으면 왠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런 사이클이 내게는 잘 어울려 이런 ‘자연과의 공존’을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 더 긴 시간을 함께하는 만큼 자연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많은 것을 준다. 그런 어마어마한 자연의 은혜를 누리면서 앞으로도 음악 활동을 계속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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