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28. 03:11
상품에 학원·병원·식당까지 칭찬 일색 후기·댓글 판쳐.. 미·중·유럽도 가짜 후기에 골치
인터넷으로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를 사 본 사람들은 사진과 너무 다른 물건을 받아 본 경험이 있다. 구매 후기도 좋고 별점도 높았는데 물건을 산 사이트로 다시 들어가 확인해 보면 모양만 비슷하고 재질이 다른 것을 확인한다. 잠시 눈이 삐었을까?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을 안 후 필자는 한때 쇼핑 중독에 빠진 적이 있다. 묶음으로 싸게 사거나 폭탄 세일하는 날을 기다리기도 했다. 가끔 모아둔 포인트를 현금 대신 쓰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필요 없는 페이지도 기웃거리고, 없어도 될 물건까지 사기도 했다. 왜 이런 어리석은 구매를 반복했을까?
무엇보다 사진에 홀렸다. 벨트가 터질 것 같은 아저씨들도 아들뻘 되는 모델이 입은 슬림핏 재킷을 입으면 어떨까 상상한다. D라인 몸매도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으면 S라인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사진들은 포토샵으로 심하게 보정되었다. 사진이란 진짜를 보여 주면서도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상상까지 불러온다.
10년 넘게 인터넷 쇼핑에서 여성 의류 등을 찍는 A에게 사진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물었다. 판매업체들은 사진가에게 무조건 "있어 보이게 찍어 달라"고 주문한다. 해서 아무리 날림으로 만든 옷이라도 고급스러운 배경에서 촬영된다. 모델이 다리가 길어 보이게 뒤꿈치를 들고 포즈 잡으면, 광각렌즈로 찍은 사진들은 다리가 늘어난다. 여기에 판매업체는 보정으로 더 늘린다. 가끔 신발이 팔보다 길쭉한 사진들이 보이는 이유가 이런 과도한 '뽀샵' 때문이라고 A는 말했다.
인터넷 블로그나 유튜브엔 '팔리는 사진 찍는 법'이나 '쇼핑몰 사진 보정, 남자 모델 어깨 넓게 만들기' 같은 강의들이 널려 있다. 이들은 서울 홍대 앞이나 신사동 가로수길, 분당 백현동 카페거리처럼 예쁜 배경이 되는 카페 동네를 찾아다니며 찍는다. 여신이라 불리며 유명한 인터넷 쇼핑 피팅 모델들은 팬덤까지 생기고 엄청난 연봉을 받으며 스카우트되어 구매자들을 몰고 다니다가, 나중엔 자신들이 직접 온라인 쇼핑 의류 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MD로 여성 의류를 15년 넘게 기획한 B는 "뼈에다 살만 코팅한 것처럼 마른 애들이 입은 옷은 보기엔 예뻐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 적힌 프리사이즈는 도저히 작아서 입을 수 없다"고 했다. 어떨 땐 집에서 걸레로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싸구려 원단으로 만든 스커트도 팔리는 걸 보면 기가 찬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터넷으로 옷을 사는지를 물었다. B는 모델의 '전신 컷' 대신 옷의 일부를 클로즈업한 '상세 컷'을 잘 보면 원단의 차이가 구분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구매자가 사진만으로 작은 차이를 구별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사진이 전부는 아니었다. C는 인터넷 오픈 마켓에서 오랫동안 물건을 팔아왔다. 그는 상품평이나 구매 후기를 절대로 안 믿는다고 했다. 안정된 수익의 재택근무라며 사람들을 모아 가짜 후기를 쓰게 하는 소문 마케팅업체들이 성황을 이루기 때문이다.
C는 오픈 마켓에서 파는 상품뿐만이 아니라 학원이나 병원, 식당과 책 서평, 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사고파는 모든 것에 달린 사용 후기나 댓글이 칭찬 일색으로 도배된 것은 무조건 의심된다고 했다. 인터넷 사용 습관이 PC보다 모바일 환경으로 바뀌면서 가짜 후기들은 배달 앱,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몰려다니며 더 활개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몇 년 전 가짜 수술 후기를 올리거나 수술 효과를 과장한 사진을 올린 병원들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공정위 담당자는 "표시광고법(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상 광고를 표시하지 않는 업체나 블로거는 단속할 수 있어도 구매 후기에 글을 쓴 사람에 대해 댓글이 허위인지 아닌지를 처벌할 법은 없다"고 했다.
외국은 어떨까? 지난달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미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가짜 후기를 올려 높은 평점으로 물건을 팔아온 한 건강보조식품회사에 14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중국도 유럽 국가들도 모두가 인터넷 가짜 후기를 솎아내는 데 골치를 앓고 있다.
인터넷 쇼핑 구매 후기가 모두 가짜라고 할 수는 없다. 싸구려 제품에 소문 마케팅인 걸 알면서도 한 번 입고 버리려고 사는 사람도 많다.
다만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할지, 믿는 것만 보이는 것인지 점점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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