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촛불 혁명' 정부서 연일 벌어지는 시대착오 코미디
조선일보 2019.06.14. 03:20
동남아 국가로 이주한 문재인 대통령 딸 부부 아들이 재학했던 초등학교가 관련 정보가 야당 의원에게 넘어간 일 때문에 감사를 받았다. 자료를 제출할 때 대통령 외손주의 정보는 모두 가렸는데도 교장·교감 등에게 무더기 경고·주의 조치가 내려졌다. 감사를 진행한 교육청 관계자가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니 무리한 감사와 징계의 배경이 짐작이 간다. 야당 의원이 딸 부부 이주 문제를 터뜨리자 청와대는 "자료 취득 경위와 공개 불법성 확인 후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대로 된 것이다. 초등학교가 정권에 밉보인 괘씸죄로 보복 감사를 받는 일이 또 있었나 싶다. 의혹을 제기했던 야당 의원은 고발을 당한 데 이어 '김학의 사건'에 연루됐다며 별건 수사를 받기도 했다.
청와대는 대통령 부부 해외 순방의 외유 성격을 지적한 언론사 칼럼에 대해 사실 왜곡이라며 정정을 요구했다. 칼럼의 논점에 대한 반박은 종종 나오지만 정정까지 요구하는 일은 드문 일이다. 대통령 순방지가 "김정숙 여사의 버킷 리스트"에 따라 정해지는 것 아니냐는 칼럼 제목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인가. 대통령 가족 문제를 건드린 야당과 언론에 대한 청와대의 "어디 감히"식 대응에는 1980년대 통치권 경호 심리가 배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비서진은 번갈아 가며 사흘째 야당을 공격했다. 일자리수석은 13일 "경기 하강에 대비하려면 추경이 중요한데 야당이 경제 파탄이니 폭망이니 하면서 정작 추경은 안 해줘 답답하다"고 했다. 경제가 어려운 건 민생을 볼모로 한 이념형 정책 실험 때문인데 마치 추경이 안 된 탓인 양 몰아가며 야당을 공격한 것이다. 앞서 정무 수석은 국민청원 사이트에 게시된 '한국당·민주당 해산 요구 청원'에 "내년 4월 총선까지 기다리기 답답하다는 국민의 질책으로 보인다"고 했고 다음 날엔 정무 비서관이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소환 청구에 대해 "국회가 일하지 않아도, 어떤 중대한 상황이 벌어져도 국민은 국회의원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원만한 국회 운영을 위해 야당과의 소통을 책임져야 할 정무 라인이 총선에서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선동에 나선 것이다.
박상기 법무장관은 12일 텅 빈 브리핑실에서 검찰과거사위 활동 종료와 관련해 '나 홀로' 기자회견을 했다. 장관이 질의응답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출입기자들이 회견 참석을 거부해서 벌어진 일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KTV 카메라 한 대만 서 있는 회견장에서 장관이 발표문을 낭독하는 광경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과거사위는 '김학의 사건' 등에서 근거가 부족한 의혹을 검찰에 수사하라고 하고, 검증 안 된 진술을 공개해 소송까지 당했다. 정식 회견을 하면 과거사위 문제점에 대한 추궁이 쏟아질 것이 뻔하니 질의응답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이 모두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해 '세계 민주주의의 희망'이라고 자처하는 정부에서 연일 벌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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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법무부 장관 主演의 블랙코미디, 기자 없는 기자회견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2일 정부과천청사 내 텅 빈 기자실에서 ‘나 홀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취재진이 박 장관의 기자회견에 불참한 것은 검찰 과거사위원회 활동 및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해 입장을 밝히면서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기자를 법무부 행사의 들러리쯤으로 여기는 박 장관의 기자회견을 취재진이 보이콧한 것은 당연한 결정이다.
이번 일은 박 장관이 민주주의 국가의 공직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심케 한다. 기자회견은 기자가 국민을 대신해 국민이 궁금해 하는 일을 묻는 자리다. 질의응답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기자회견 대신 담화문 발표나 보도자료 배포로 갈음했어야 한다. 기자회견 형식은 고집하면서 질문은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오만한 처사다.
검찰 과거사위 활동에 대해 박 장관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는 짐작이 간다. 과거사위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에 연루됐다며 수사를 촉구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들은 과거사위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냈다. 박 장관도 과거사위가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조사할 때,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을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또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에서 질의응답을 하다 자칫 말실수라도 해서 문제를 키우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상황은 박 장관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과거사위 위원 9명 중 5명을 이념적 방향성이 뚜렷한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으로 채우고도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올 3월 김 전 차관 사건과 장자연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지시한 직후, 법무부는 과거사위 활동 기간을 5월 말까지로 연장했다. 결국 현 상황은 박 장관이 청와대와 보조를 맞추다 벌어진 일이다. 박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 각료이기 이전에 국민의 공복이어서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는 데 정치적 균형을 지킬 의무가 있다. 이번 일이 뼈아픈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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