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8.10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나는 인간의 위선이 가장 무섭다"
한·일 관계라는 블랙홀이 거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요즘입니다.
조금 한가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신문사 문을 두드리던 20대 청년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문학 기자를 꿈꾸던. 신문사 지망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문화부 기자 하고 싶어서 시험 친다고
생각하던 순진한 시절이었죠. 이념이나 거대 담론이 종언을 고하고, 정치나 경제보다 문화가
훌쩍 매력적으로 보이던 90년대의 짧은 삽화입니다.
최근 두 권의 책을 연이어 펴낸 작가로 이응준(49)이 있습니다.
'해피붓다'(은행나무 刊)와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파람북 刊).
일종의 '생각 수첩'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는…'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내가 처음 작가가 되었던 스무 살 그 무렵에 철없이 밝게만 생각했던 것처럼 아직도 이 시대가
문학과 문학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세상이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무언가를 기록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그는 한낱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서 소설가가 된 게 아니라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합니다.
이야기꾼 재능에 특장을 지닌 소설가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지향과 재능이 다른 거라 생각하기로 합시다.
에세이 소설로 호명한 '해피붓다'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인간의 위선이 가장 무섭다. 위선의 가면은 별것 아닌지 모르지만,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는 그 몸은 악마가 하는 짓을 천사의 말을 하며 저지르기 때문이다.
혁명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역시 상하기 쉬운 생선이로되, 이 생선은 그저 구더기만 들끓는 게 아니라
정의로운 흉기가 되어 가슴이 답답하고 무지한 인간의 손아귀에 꼬옥 쥐이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세상의 모든 파시스트와 포퓰리스트는 자신이 선의와 정의를 겸비한 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합니다.
한·일 관계라는 블랙홀에서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거짓과 위선을 목격 중이죠.
이 자리가 구체적 소음(騷音)을 열거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그래서 세계와 인간을 진단하고 예언하는 문학 작품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름휴가 마치고 2주 만에 '아무튼, 주말' 다시 시작합니다.
커버스토리에서는 돌아온 개그맨 심형래의 절망과 희망을,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외교 책사로 불리던
라종일 교수 인터뷰에서는 현실과 대안을 살펴봐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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