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탄핵 악령이 되살아나려 한다

바람아님 2019. 11. 30. 08:51
문화일보 2019.11.29. 11:40



전임 정권보다 더한 적폐 속출
민정수석실이 정치공작 거점

권력 위협할 시한폭탄 수두룩
헌재 결정문 代入땐 文도 심각

탄핵당한 朴정권 억울할 지경
과감한 쇄신 없인 비극 악순환


3년 전인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다음 해 3월 10일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옴으로써 박 대통령은 4년 보름 만에 하야했다. 정치적·법리적 논란이 완전히 끝나진 않았지만, 탄핵 자체를 번복할 수도, 없던 일로 되돌릴 수도 없다. 좋든 싫든 역사의 화석이 되어 국가 발전의 반면교사 역할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탄핵이 정당했는지 되묻게 하는 일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전임 정권을 쫓아내고 들어선 세력의 농단과 적폐, 위선과 불의가 더 심각하다. 입만 열면 정의와 공정을 외쳤던 세력이기에 국민 실망은 더 크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전후해 조국 사태, 유재수 감찰 중단 사건, 울산시장 선거 정치공작 의혹이 잇달아 불거졌다. 전임 정권 공직자들을 줄줄이 사법처리하면서 뒤에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그런 일을 벌인 대담함이 놀랍다. 권력에 취해 자계(自戒)가 허술했다는 의미다. 그러니 유사한 사건이 속출할 것이다. 조국·백원우 등 핵심 인사들의 말 한마디로 대통령까지 연루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널려 있다. 태극기 집회가 아니더라도, 문 정권 실정(失政)에 비례해 ‘박근혜 탄핵이 잘못 아니었던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국민이 늘어간다.


조국 사태와 최서원(최순실) 사태는 상징적이다. 헌재 결정문에 따르면, 탄핵의 본질은 조국 일가나 최서원 개인의 범죄 자체가 아니라 그와 관련한 대통령의 책임 문제다. 재적 국회의원의 3분의 2 이상, 헌법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하면 그만이다. 최서원이 대통령을 움직였다고 하지만, 탄핵소추안에 사실관계는 두루뭉술 적시됐을 뿐이다. 문제의 두 재단과 관련해서도 최서원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 공식 역할은 없었다. 친분 있는 인사를 내세워 재단을 지배하려 했더라도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정리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뒤늦게나마 박 전 대통령은 사과하고 시정을 약속했다.


절대다수 국민은 조국 일가의 위선과 범법에 분노하면서 법무장관만은 안 된다고 외쳤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밀어붙였고, 장관직 사퇴 이후에도 조국 맞춤형 발언과 정책을 쏟아낸다. 그 유명한 ‘피청구인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는 탄핵 결정 주문(主文) 바로 앞에 이런 결론이 나온다.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 대신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언행을 보면 헌법 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기준에만 비춰봐도 문 대통령은 자유롭지 못하다.

대통령 직무와 관련된 위헌·위법 논란도 쌓이고 있다. 탈북자 2명의 강제·비밀 북송은 헌법과 유엔 고문방지협약을 위배한 행위다. 전임 정권이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를 파기해놓고 그보다 못한 징용배상 ‘문희상 안(案)’을 거론한다. 적자국채 발행, 예비비 전용은 국가재정법에 위배될 소지가 농후하다. 검찰 개혁안, 자사고 폐지 시행령, 탈원전, 터무니없는 낙하산 인사에도 내용과 절차 양 측면에서 위법 여지가 수두룩하다. 무리한 사법부 코드화로 삼권분립까지 위협받는다. 친북 정책들을 보면, 헌법 수호와 국가 보위라는 근원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정도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이라면서 많은 약속을 했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독선을 바로잡긴커녕 하산길에도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시정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박근혜 탄핵의 근거로 적시돼 있다.

실현 가능성과 무관하게 문재인 탄핵 주장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현 정권이 정치 갈등의 진폭을 더 키운 데 따른 자업자득 성격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분열을 위한 박근혜 사면 카드가 나돈다. 문 정부 실정에 따른 정치적 반대급부에다 사면권 행사에 따른 복권까지, 현 정권이 2중으로 박 전 대통령을 돕게 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문재인-박근혜의 ‘적대적 윈윈’으로 볼지 모르지만 단견이다. 불행을 2중으로 재촉할 뿐이다. 박 전 대통령 역시 그런 부활을 기대한다면, 보수 지도자로서 영원히 죽는 길이다. 내년 4월 총선 뒤엔 성패와 상관없이 문 대통령 레임덕이 불가피하다. 과감한 국정 쇄신이 없다면, 햄릿의 악령처럼 탄핵 악순환을 자초한다. 3년 전의 수모를 돌려주려는 세력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