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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62]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만남

바람아님 2014. 1. 24. 11:18

(출처-조선일보 2012.05.09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폴란드 트레블링카의 유대인 절멸수용소(extermination camp)에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인 아브라함 봄바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렇게 증언한다.

어느 날 수용소에 전직 이발사들을 모두 차출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봄바를 비롯한 이발사들이 동원되어 간 곳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독가스로 죽이고 소각하는 캠프였다. 나치는 그곳이 학살 장소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온갖 방식으로 위장해 놓고는 반어적으로 그 입구를 '힘멜벡(Himmelweg,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 불렀다.

하루에 수백 명씩 사람들을 죽이던 나치들로서 가장 신경 썼던 일 중 하나는 희생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곧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만일 자신이 30분 내에 죽어서 재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 누군들 가만히 있겠는가. 그래서 일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이 이발을 하고 소독한다고 속이는 것이었다.

이발사들이 대기하고 있으면 여성과 아이들이 수십 명씩 완전히 옷을 벗고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이들이 벤치에 앉으면 한 사람당 1~2분 안에 머리를 짧게 자른다. 나치들이 이 머리카락을 모아 옷감을 짠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고는 샤워를 해야 한다며 옆방으로 들여보내 가스를 터뜨려 살해하는 것이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 중 살아서 나간 사람은 없다. 시체를 치우고 나면 다시 다음 집단이 들어온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동료는 기가 막힐 일을 당한다. 다름 아닌 자기 부인과 여동생이 들어온 것이다! 그들을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기회이지만 바로 뒤에 나치 친위대 장교가 지키고 있어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자칫하면 그마저 함께 죽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 단 1분이라도 더 함께 있는 일뿐이다. 그러고는 마지막 포옹…. 수업 중에 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너무 슬퍼 그만 목이 멘다. 그 어떤 역사 사건이라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직면해야 하며 너무 감성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은 하면서도 밀려드는 슬픈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은 클로드 란츠만 감독이 유대인 절멸수용소 생존자들을 인터뷰하여 만든 다큐멘터리 필름 '쇼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란츠만 감독이 11년 동안 총 350시간분의 인터뷰를 하고 만든 9시간30분짜리 대작이다. 슬픔과 고난에 찬 민족의 기억을 지켜내려는 노력이 실로 처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