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3.14 최규민 경제부 차장)
국민 70명이 죽었는데도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없어
"잘못하면 사과하라"는 상식이 먼지처럼 허무해진 세상이 됐다
최규민 경제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마지막으로 사과한 것은 2018년 7월이다.
그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했다.
지키지 못한 다른 공약이 허다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생뚱맞은 사과였다.
이후로는 자신이 한 일에 제대로 사과한 적이 거의 없다.
엉터리 경제정책으로 가장들이 줄줄이 일자리를 잃어도,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도,
방역 실패로 국민 70명이 목숨을 잃어도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최근 마스크 부족 사태에 문 대통령이 모처럼 사과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마스크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치는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장관들을 질책했다.
안타깝다는 의미의 '송구'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와 엄연히 다르다.
문 대통령은 왜 이리 사과에 인색할까. 얼마 전 지인들과 자리에서 이 주제로 얘기가 오갔다.
누군가는 문 대통령이 변호사 출신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법적 분쟁에서 사과는 고의나 과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교통사고가 났을 때 먼저 "미안하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권한다.
다른 누군가는 전직 대통령들을 반면교사 삼은 것 아니겠냐고 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이명박 대통령은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 "저 자신을 자책했다"고 거듭 사과했지만,
시위는 사그라들기는커녕 오히려 기세가 올랐다.
태블릿 PC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운명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사과가 능사가 아니라는 교훈을 문 대통령은 전임자들의 사례를 통해 배웠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흡사 교주와 광신도 같은 문 대통령과 지지자들의 특수 관계에서 원인을 찾았다.
사이비 종교 신도들이 교주를 재림신으로 받들듯, 지지자들에게 문 대통령은 무오류(無誤謬)의 철인(哲人)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면 그건 대통령 잘못이 아니라 발목을 잡는 야당, 언론, 친일파, 신천지, 재벌, 검찰,
기득권 세력 탓이라는 세계관이 '문빠'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지지자들은 어떤 논리를 동원해서든 대통령을 결사 옹위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신자들의 마음에 의심이 자라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정권의 위기라는 걸 문 대통령은 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를 공감 능력 부족에서 찾았다.
종종 상황에 맞지 않는 언행을 보이는 것이 그 증거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지뢰로 발목을 잃은 병사를 찾아 "짜장면 먹고 싶지 않으냐"고 묻고, 천안함 유가족들을 청와대로
불러 김정은과 손잡고 웃는 사진을 선물했다. 세월호 당일에는 점심 저녁으로 고급 일식을 즐겼고,
코로나 첫 사망자가 나온 날엔 짜파구리를 먹으며 파안대소했다.
남의 아픔을 공감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미안한 감정을 가질 수 있겠나.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를 국민은 이리저리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잘못이 있으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라'는 기본적 상식이 이 정권에서 먼지처럼 허무해졌다는 사실이다.
서글프지만, 상식이 전도된 시대를 살아가려면 부모가 자식에게 전하는 가르침도 이렇게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
"뻔뻔해져라. 내로남불을 기본기로 장착하고 절대 사과하지 말아라. 미안하면 지는 거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3/20200313026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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