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저술가 케이티 앨버드는 2000년 벽두에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냈다.
사람들은 자동차의 등장으로 길바닥의 말똥이 사라지고, 멀리 떨어진 가족들이 더욱 가까워지며, 도시의 혼잡과 오염이 해소되고, 계급 차별이 없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뉴욕시의 보건 담당 공무원은 "핸들을 돌리는 데 드는 가볍지만 의도적인 노력" 덕택에 "활발한 신체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3년 전 어느 날 아침 나는 대문을 나서다 갑작스러운 현기증 때문에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몸을 추스르고 대문 앞 층계에 걸터앉아 나는 문득 '과로사'를 떠올렸다. 타고난 오지랖 때문에 하루에도 열댓 가지 일을 하며 사는 나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그래서 그 길로 병원에 가서 난생처음 종합진단을 받았다. 피도 10튜브 이상 뽑고 둥근 통 안에 누워 사진도 찍었다. 며칠 후 결과를 보러 병원에 들렀을 때 의사 선생님은 한참 모니터를 응시하더니 딱 한 마디를 던졌다. "최 교수님, 운동 좀 하세요?" 그 모든 증상은 오로지 운동 부족에서 온 것이란다.
지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사 중 한 분은 어느 인터뷰에서 시민을 위해 과로사를 하는 게 평생 꿈이라고 대답했다지만, 나는 그럴 용기는 없다. 하지만 내 하루 일과 중 두세 시간씩 헬스센터를 찾는 일은 지나친 사치란 걸 잘 알기에 그 다음 날부터 나는 걸어서 등교하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이 무척 빠른 편이다. 그런 빠른 걸음으로 35분쯤 걸린다. 모든 전문가 말씀에 최고의 운동이란다. 연세대 교정에는 걸어서 통과하기에 150미터쯤 되는 매우 훌륭한 숲이 있다. 하루에 두 차례씩 나는 그 숲에서 산림욕을 한다. 걷기 시작하며 내 건강은 30대로 되돌아간 듯싶다. 연세대에 감사기부라도 해야 할까 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을 번역한 김화영 선생님은
걷기예찬은 곧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이라고 예찬하신다.
걷기 시작하며 나는 자연스레 내 차와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
그런데 이놈의 도시에서는 차와 완전히 이혼하고 살기가 영 쉽지 않다.
그래서 이혼 숙려 기간이 벌써 3년을 끌고 있다.
생명과 인식을 예찬하려는데 삶이 자꾸 내 발목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