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우리나라 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경우가 있다. 저명한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가 동료 학자에게서 들었다는 아일랜드 판 자린고비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18~19세기에 아일랜드에서는 감자가 주식이었다. 별다른 부식 없이 매일 감자만 먹으면 분명 고기반찬이 그리웠을 것이다. 이때 가난한 집에서는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실에 꿰어 식탁 위에 매달아 놓고는 가족들이 포크로 감자를 찍어서 돼지고기에 겨냥한 다음 먹었다고 한다.
감자가 유럽에 들어온 것은 16세기 중엽의 일이다. 감자는 재배, 보존, 조리 등 모든 면에서 유리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생산성이 아주 높았다. 그렇지만 장점이 많다고 해서 새 작물이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빵이 주식인 유럽에서 감자는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심각한 기근 문제에 봉착한 18세기에 가서야 가난한 지역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되었다.
아일랜드에서는 일단 감자가 자리를 잡자 지나치게 여기에 의존하게 되었다. 작은 땅뙈기로도 한 가족이 먹고살 수 있었으므로 온 국민이 감자 농사를 짓고, 그야말로 1년 열두 달 삼시세끼를 감자만 먹게 된 것이다. 감자 덕분에 먹는 문제가 해결되자 처녀 총각이 일찍 결혼하게 되고, 그 결과 인구가 크게 늘었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를 야기하는 법, 감자마름병이라는 돌림병이 창궐하여 지역에 따라 감자 생산량이 90%나 감소했다. 1845~1846년에는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사망하거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자린고비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자린고비라고 해서 끝까지 아끼고 안 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자린고비 이야기 중에는 애지중지 모은 재산을 늙어서 좋은 일에 쓰는 경우도 있다.
충북 음성군의 자린고비 이야기의 주인공 조륵(趙勒)은 환갑잔치를 벌여 사람들을 모이게 한 다음,
"여러분, 그동안 나는 나 혼자 잘 살려고 구두쇠 노릇을 한 게 아니오.
오늘 찾아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재산을 모았소. 환갑날인 오늘부로 내 일은 모두 끝났소"
하면서 전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으로 끝난다.
평생 힘들게 모은 재산을 좋은 용처에 기부하는 분들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이런 존경할만한 자린고비들이 우리 사회를 더 윤택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시대의 자린고비]
황금자 할머니 별세 "위안부 피해 '황금자 할머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