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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50] 악수 문화

바람아님 2014. 1. 28. 09:21

(출처-조선일보 2014.01.2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언젠가 탤런트 정준호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모든 방청객과 일일이 악수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는 워낙 인맥도 넓지만 누구를 만나든 다짜고짜 악수부터 하는 습성을 지녔다고 한다. 심지어 부모님한테도 대뜸 악수부터 청한단다. 우리 사회에서 악수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정치인이다 보니 그가 머지않아 정치계에 뛰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자연스레 나온다.


악수의 기원은 많은 인간 풍습이 그렇듯이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적어도 기원전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는 헤라와 아테나가 악수하는 조각 벽화가 있다. 그 옛날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표시로 빈손을 내밀면서 악수 문화가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침팬지들은 종종 서로 손목을 잡고 높이 치켜든 채 털 고르기(grooming)를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 축구팀으로 진출한 이영표(토트넘)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경기 중 서로 유니폼은 다르지만 슬며시 손을 잡는 사진은 인터넷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으로 올라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연례행사처럼 또다시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전염성 질병 관점에서 보면 악수는 최악의 행동이다. 새들이 서로 악수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감기 환자로부터 차례로 악수를 이어가는 실험을 해보았더니 적어도 네 번째 사람에 가서야 바이러스가 기준 이하로 검출됐단다. 그런데 악수를 하며 상대방 손을 조몰락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 중에 그런 사람이 특히 많다. 정치인도 아니면서 그러는 사람 중에 결국 정치계로 가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운동선수나 젊은 친구들 사이에 유행하는 '주먹 맞대기(fist bump)'가 악수보다 훨씬 위생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병균이 옮을 수 있는 면적과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악수가 비폭력의 표현으로 시작되었다면 주먹 맞대기는 언뜻 폭력적인 제스처로 보일 수 있지만 전염성 질병이 날이 갈수록 극성을 부리는 현대사회에 새로운 인사 문화로 채택해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