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그림, 詩에 빠지다]“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고 살아도 나 좋으면 그뿐”-임포 ‘산원소매’

바람아님 2014. 3. 3. 18:38
동산의 작은 매화(山園小梅) 2수(二首)
임포(林逋)

꽃이란 꽃 다 떨어진 뒤 홀로 곱고 아름다워 (衆芳搖落獨暄姸)
작은 동산 향한 운치 가득가득 차지하네 (占盡風情向小園)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스듬히 드리우고 (疎影橫斜水淸淺)
그윽한 향기 떠도는데 달은 이미 어스름 (暗香浮動月黃昏)
겨울새는 앉으려고 먼저 주위 둘러보고 (霜禽欲下先偸眼)
어지러이 나는 나비 외로운 혼을 아는 듯해 (粉蝶如知合斷魂)
다행히 나는 시를 읊어 서로 친할 수 있으니 (幸有微吟可相狎)
악기가 없어도 항아리술 함께할 수 있으리 (不須檀板共金尊)
   
▲ 정선 ‘고산방학’ 비단에 연한색, 22.8×27.8㎝. 간송미술관

    “오늘은 뭐했니?”
   
   “산양도 보고 멧돼지도 쫓았어요.”
   
   “멧돼지? 무슨 멧돼지?”
   
   “부대 옆에 산이 있는데 눈이 많이 와서 먹을 것이 없으니까 내려오는 것 같아요. 근데 덩치가 장난이 아니에요. 1m가 넘어요.”
   
   “그래? 멧돼지고기 맛있다는데 잡아서 먹지 그랬냐? 청정지역에 사니까 고기도 맛있을 텐데.”
   
   “안 돼요. 우리 부대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데 그걸 멧돼지가 와서 먹어요. 우리는 쓰레기 치워주니까 좋고 멧돼지는 굶지 않아서 좋고 상부상조하는 거죠. 어미 돼지 한 마리만 오는 것이 아니에요. 새끼를 여섯 마리씩이나 거느리고 온 식구가 총출동해서 와요. 그러니까 죽이면 안 돼요.”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들이 전화해서 한 말이다. 입대하기 전에는 고기밖에 모르던 아들이 멧돼지를 죽이면 안 된단다. 사람한테 이로운 동물이니까 죽이면 안 되고 새끼가 있는 어미니까 죽이면 안 된단다. 인내심뿐만 아니라 동물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우는 것 같아 군대 잘 갔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가야 사람이 된다. 기왕이면 멧돼지와 산양이 수시로 내려오는 최전방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풍류와 은일의 상징 매처학자
   
   눈이 소복이 쌓인 날이다. 천지가 눈에 덮여 형체를 감추었다. 여간해선 바깥 출입조차 그만둘 정도로 쌀쌀한 겨울날, 유건(儒巾)을 쓴 선비가 호숫가 언덕에 서 있다. 고목에 두 팔을 걸친 걸 보니 그 자리에 서 있은 지 꽤 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곁에 선 동자는 선비의 그런 모습에 이골이 난 듯 무심히 서 있다. 날도 추운데 선비는 왜 여기 서 있는 걸까.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그의 시선을 따라 하늘 위를 올려다본다. 학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선비가 기다린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학이다. 잠시 후에 학은 날개를 접고 선비 곁에 내려앉을 것이다. 학이 무사히 귀가했으니 선비도 마음을 내려놓고 비로소 방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식 같은 학이 아닌가.
   
   허리가 아프도록 서서 사람 대신 학을 기다린 주인공은 송(宋)나라 때 시인 임포(林逋·967~1028)다. 그는 일찍이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지만 공부에 전념하여 시서화에 일가를 이루었다. 벼슬에 뜻이 없어 관로를 포기하고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일대를 방랑했다. 결혼은 하지 않아 자식도 없었다. 나중에는 항주(杭州)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들어가 초옥(草屋)을 짓고 살았다. 가끔씩 마음에 맞는 친구들이 찾아오면 청담(淸談)을 나눌 뿐 20년간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임포가 사는 집 주변에는 매화나무가 많았다. 매화나무 숲에서 자식 대신 학을 기르며 살았다. 매화를 부인으로, 학을 자식 삼아 사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매처학자(梅妻鶴子)’라 불렀다.
   
   매처학자의 은거생활은 은사(隱士)의 풍류로 상징되어 많은 학자의 부러움을 샀다. 평생을 등골 빠지게 일해 식구를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들에게 ‘무자식 상팔자’인 매처학자는 그야말로 최고로 팔자 좋은 사람이었다. 돈 들어갈 일 없지, 속 썩을 일 없지. 더구나 시도 잘 지어 ‘그윽한 향기 떠도는데 달은 이미 어스름(暗香浮動月黃昏)’ 같은 명구를 지어 길거리의 어린아이조차 ‘암향부동(暗香浮動)’을 읊조리게 했으니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임포만큼 심간 편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임포가 마치 자신들이 지향했던 이상적 삶을 대신 살아주기라도 하는 듯 대리만족을 느끼며 매처학자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존경심을 보냈다. 임포가 친구를 맞이한 매화나무 그늘은 한가로운 시정의 공간으로 칭송받았다. 자연과 벗하며 노년을 보내는 임포의 고독은, 고독이 아니라 낭만이요 서정이었다.
   
   
    성긴 그림자는 비스듬히 드리우고
   
   임포를 부러워한 사람은 월급쟁이 관리나 학자들만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송 황제 진종(眞宗·998~1022)은 비단과 양식을 보내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인종(仁宗·1023~1063)은 장례 비용을 대주면서 ‘화정(和靖)’이란 호를 하사했다. 중국과 조선의 선비와 화가들은 수백 년에 걸쳐 시와 그림으로 그에 대한 연모의 마음을 멈추지 않았다. 임포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암향부동(暗香浮動)’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뜰에 매화를 심고 그윽한 향기를 맡겠노라 야단법석이었다.
   
   정선이 그린 ‘고산방학(孤山放鶴)’도 임포에 대한 찬사이자 오마주다. 임포가 기대고 선 고목은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매화나무다. 봄보다 먼저 꽃을 피워 그윽한 향기로 생명의 문을 여는 선구자 같은 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겨울. ‘암향부동(暗香浮動)’이 아무리 멋있는 문장이라 한들 꽃이 없는데 그윽한 향기를 맡을 수는 없다. 대신 정선은 ‘암향부동’의 앞 구절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물 위에 비스듬히 드리우고(疎影橫斜水淸淺)’에 주목했다. ‘고산방학’에 등장하는 고목은 몇 그루일까. 두 그루일까 세 그루일까. 얼핏 보면 세 그루 같지만 사실은 두 그루다. 임포와 동자를 호위하듯 서 있는 두 그루 나무는 진짜 나무다. 오른쪽 학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는 진짜 나무가 아니다. ‘성긴 그림자’다. 다만 그 그림자가 물 위가 아니라 눈 위에 드리웠을 뿐이다. 얼어붙은 호수에 그림자가 비칠 수 없지 않은가. 그윽한 향기를 그릴 수 없어 성긴 그림자를 표현한 정선은 임포보다 더 매화를 잘 아는 ‘매처학자(梅處學者)’다.
   
   정선은 같은 제목의 그림을 한 점 더 그렸다. 2006년 독일에서 경북 칠곡 왜관수도원으로 반환된 화첩에 실린 작품이다. 왜관수도원 소장 작품에는 ‘고산방학’이란 제목이 분명히 적혀 있고 겨울 풍경이 더 뚜렷하지만 필자는 간송에 소장된 이 작품이 훨씬 더 임포의 시 세계를 잘 표현했다고 본다. ‘성긴 그림자’ 때문이다. 그림자가 이 그림을 살렸다.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