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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53] 일본의 남성 배려

바람아님 2014. 3. 31. 22:33

(출처-조선일보 2014.02.1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극지연구소의 숙원 사업인 장보고과학기지가 착공한 지 7년 만에 문을 열었다. 1988년 남극대륙의 북서쪽에 있는 킹조지 섬에 건설된 세종과학기지에 이어 남동 해안의 테라노바 만에 두 번째 상설 기지가 건설된 것이다. 남극은 해양 생태나 기후변화 연구 분야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과학 연구의 프런티어다. 앞으로 이 두 연구 기지의 적절한 분업과 협업으로 과학 한국의 위상이 한 단계 도약하리라 확신한다.

장보고기지는 규모에서 세종기지와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월등하지만 극지 생활은 여전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도전이다. 워낙 먼 곳이라 일단 배치되면 장기 근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 대원들의 성적 욕구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는 드러내놓고 논의하기는 어렵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적 문제이다. 세계 30여개국이 남극에 크고 작은 연구 기지를 갖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배려는 남다르다. 1982년 규슈대 이학부 명예교수 기타무라 다이이치 박사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1957년 쇼와 기지를 준공하고 1차로 파견한 월동 대원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위안부를 데려가진 않았지만 문부성이 직접 나서 '남극 1호'라는 이름의 성 노리개 인형(sex doll)을 제작하여 보냈다. 현지에서는 '벤텐(미인)'이라고 부른 이 인형은 기지 밖에 따로 마련한 이글루에 배치해 원하는 사람이 직접 물을 데워 주입하여 사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최근 일본군 강제 동원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와 손까지 잡으며 손수 용서를 빈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와 달리 몇몇 일본 정치인은 위안부의 존재 자체마저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전장도 아닌 관측 기지에 근무할 남자 대원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국가 예산으로 만든 인형 얼굴이 당시 인기 여성 연예인을 쏙 빼닮았다는 풍문까지 나돌았다. 실로 거침없고 세심하기까지 한 일본 문화의 남성(男性) 배려 배후에는 마찬가지로 거침없고 노골적인 여성(女性) 유린이 자리 잡고 있다. 예로부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긴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