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208/15/2012081567003_0.jpg)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 7월, 미국 함대가 사이판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이 섬이 미군 수중에 넘어가면 미군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직접 폭격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일본의 몇몇 파일럿들이 자살 공격을 감행했고, 이후 오니시 다키지로(大西瀧治郞) 중장이 가미카제 공격을 일본군의 전략으로 체계화했다. 그렇지만 비행기를 몰고 미군 함선에 돌진하는 자살 특공대는 미군이 방공 능력을 강화하자 거의 대부분 무의미한 죽음으로 끝나곤 했다.
일제가 항복한 다음 날인 8월 16일, '가미카제의 아버지' 오니시 다키지로는 아이하나 노부오처럼 그가 죽음으로 내몰았던 4000명의 젊은 파일럿에게 사죄하고, 살아남은 청년들에게 일본의 재건과 국제평화를 당부한 후 할복자살했다. 2000만 명이 죽으면 제국을 지킬 수 있다고 단언했던 그였다. 그는 죽는 사람의 목을 칼로 쳐주는 가이샤쿠닌(介錯人) 없이 할복하여 15시간 동안 극도의 고통을 겪다가 죽었다. 그가 자살할 때 쓴 칼은 야스쿠니 신사에 보존되어 있다.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자는 남의 목숨도 기꺼이 바치는 자라고 했던가. 일본 제국주의는 이웃 국가의 국민만이 아니라 자국 국민부터 희생을 강요한 죽음의 체제였다. 그 체제가 패망한 것은 일본 국민에게도 해방을 의미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갈수록 그 해방의 의미를 망각하고 왜곡하는 것 같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그들에게 오니시 다키지로의 칼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