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08.29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지금부터 약 30~40년 전만 해도 대중가요에 대한 검열과 금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했다. 민은기 교수가 편집한 '독재자의 노래'에 나온 사례들을 인용해 보자.
"송창식의 '왜 불러'는 반말을 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이장희의 '그건 너'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이유에서, 조영남의 '불 꺼진 창'은 그냥 창에 불이 꺼졌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창법 저속과 불신감 조장이라는 항목으로 금지 조치되고, 한대수의 '물 좀 주소'는 노래 제목이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행복의 나라로'는 '그렇다면 지금은 행복의 나라가 아니라는 뜻인가'라는 이유로,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느냐.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하면 사회에 우울함과 허무감이 조장된다'는 이유로, 정미조의 '불꽃'은 공산주의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 킴'은 '단신인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배호의 '0시의 이별'은 통금이 있던 시절 '0시에 이별하면 통행금지 위반'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정말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금지곡 딱지를 받던 시절이다. 만일 싸이의 '오빤 강남 스타일'이 그 시절에 나왔으면 아흔아홉 가지 이유쯤으로 금지곡이 됐을 법하다.
독재체제가 음악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음악이 다른 어느 예술보다 인간의 정신세계에 직접적으로 가 닿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은 사회 통합을 강화하는 접착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대중을 통제하고 세뇌하는 데에 음악보다 효과적인 수단은 많지 않다. 그래서 체제를 정당화하는 음악을 장려했고 반대로 지배 질서와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음악은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1960~70년대에 대해 우리는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고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낸 도약의 시대로만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시대에 지극히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간의 마법은 지난 시절을 미화하여 간직하도록 만든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 당시에는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아픈 경험들도 수두룩하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극복하고 오늘 여기에 도달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서민의 노래는 다른 어느 문서 자료보다 많은 것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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