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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43] 전당포의 추억

바람아님 2014. 4. 5. 18:42

(출처-조선일보 2012.01.0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이 땅의 50~60대라면 누구나 전당포의 추억 하나쯤은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시계가 손목에 채워져 있던 시간보다 전당포에 잡혀 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그런 추억 말이다. 최근 사양 일로에 있던 전당업이 IT 덕택에 되살아나고 있단다. 용산전자상가에 요즘 전자제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IT전당포'가 성업 중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묘한 격세지감을 느낀다. 1970년대 중반에 등장하여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카시오전자시계를 전당포에 맡기려다 낭패를 본 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전자시계를 건네자 전당포 아저씨는 그걸 귀에 대보더니 가지도 않는 시계로 돈을 빌리려는 나쁜 놈들이라고 우릴 매몰차게 꾸짖었다. 재깍재깍 아날로그 시계만 취급하던 그로서는 갑자기 들이닥친 디지털 시대가 그리 만만치 않았으리라.

전당업은 퍽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는 전당이라는 용어가 15세기 중반에 편찬된 '고려사'에 처음 등장하지만,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절에 이미 채무 담보를 일컫는 명칭이 17개나 있었다고 한다. 1876년 조선의 개항과 더불어 이주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이 질옥(質屋)을 만들어 수십 년 동안 우리의 토지와 재산을 갈취하던 시절은 가히 전당업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당업은 원래 물품이 아니라 사람을 담보로 하는 인질 또는 인신매매로 시작된 사금융업이다. 생계유지를 위해 처자식을 전질(典質)로 잡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학자금 대출제도도 사람 또는 그 사람의 미래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인질 전당업'이다. 대책 없는 진보주의자라고 욕먹을지 모르지만, 나는 오랫동안 돈이 공부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사회를 꿈꿔왔다. 물론 부모를 비롯한 가족에게 학비조달의 우선 책임이 있지만 누구든 공부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뒷바라지해주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없을까 꿈꾸며 산다. 아무리 저금리라지만 취업하자마자 갚기 시작해야 하는 삶이 왠지 전당포에 잡혀 있는 시계나 노트북 같아 서글프다. 가진 것 없고 물려받은 것 없는 이 나라가 기댈 데는 오로지 교육밖에 없다. 나는 우리의 목표가 학자금의 대출이 아니라 지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복지의 종결은 교육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