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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44] 몸짓신호와 거시기

바람아님 2014. 4. 7. 22:28

(출처-조선일보 2012.01.09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우리는 자연계에서 가장 정교한 언어를 구사하는 동물이다. 여기서 언어란 물론 말과 글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사실 몸짓으로도 상당히 다양한 의사를 전달한다.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면 긍정의 의미이고 좌우로 흔들면 부정의 의미이다. 고개를 흔들어 의사를 표시하는 이 같은 몸짓신호는 언어가 달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해하는 우리 종(種)의 보편적 속성이다.

최근 이처럼 고개를 흔드는 신호가 우리랑 가장 가까운 영장류 사촌인 보노보에서도 관찰되었다. 독일 영장류학자들은 보노보가 고개를 흔든 49차례의 행동 중에서 적어도 13번은 다른 보노보에게 하던 짓을 멈추라고 요청하는 상황이었음을 확인했다. 보노보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하지만 좌우로 흔들며 "안 돼"라고 말할 수는 있다. 틈만 나면 나무에 기어오르려는 아기의 손목을 잡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엄마의 모습이 여러 차례 관찰되었다.

인도 사람들은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니게 어중간한 각도로 고개를 흔든다. 이는 "그렇다"나 "고맙다"에서 "좋다" 또는 "이해한다"는 뜻까지 아우르는 매우 복합적인 몸짓신호이다. 상대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의미도 지닌다. 길 건너에 있는 친구에게 알아보았다는 뜻으로 손 대신 머리를 흔든다. 버스에서 옆에 앉아도 좋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닥이기도 한다. 빠른 속도로 여러 차례 흔들면 잘 알았다는 뜻이고,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천천히 흔들면 우정과 배려의 표시이다.

흥미롭게도 인도 사람들은 이런 고개 흔들기 행동의 복합적인 의미를 거의 다 담고 있는 '아차(accha)'라는 힌디어 단어도 사용한다. 우리말에도 '아차' 못지않게 다양한 의미를 지닌 말이 있다. 바로 '거시기'이다. 언젠가 목포대에 계시는 선배 교수가 학생에게 "거시기에 가서 거시기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 학생이 정확하게 그 선배가 원하는 물건을 가져오는 걸 보고 탄복한 적이 있다. 눈빛만 보고도 '거시기'를 알려면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국민은 '거시기'를 말하는데 정치인들은 도무지 그게 뭔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다음 국회에는 해외동포는 물론, 20대와 비정규 근로자들을 대표하는 사람들도 고르게 포함돼야 비로소 국민들의 다양한 '거시기'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