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3.25.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읽었던 영어 지문 중에 지금도 생각나는 게 있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 누굴까를 묻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답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처음 굴을 먹어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너도나도 먹고 즐기는 별미가 됐지만 그 미끈둥미끈둥하고 물컹물컹한 걸 처음 입에 털어 넣은 사람의 용기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미국 록펠러대의 생태학자 코언(Joel Cohe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매일 우리 인류의 식탁에 오르는 생물이 무려 5000여 종에 이른단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식단에 포함되기까지에는 누군가의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시식으로부터 때론 몇몇 사람의 희생을 거쳐 드디어 안전하고 맛있는 요리로 개발되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복을 요리할 때 내장과 알을 터뜨리지 않고 완벽하게 제거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목숨이 희생됐을까 상상해보라. 버섯과 벌이는 줄다리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에 두 연예인이 보르네오 바다에서 잡은 해삼을 먹고 심한 구토를 하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현생 인류 600만년 진화의 역사 동안 점진적으로 벌어졌을 일을 무지해서 용맹스러운 대한민국 연예인들이 단숨에 저지르는 이런 모습을 얼마나 더 오랫동안 지켜봐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살코기는 오랜 세월 육질뿐 아니라 독성도 다스린 것들이다. 야생동물을 그대로 먹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얼마 전 한 출연자의 자살로 종영당한 프로그램의 전철을 밟으려는가.
다양한 생명체가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정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책 '열대예찬'의 저자로서 나는 '정글의 법칙' 제작진에게 일찍이 이 문제를 제기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슬픈 열대'를 부르짖고 있는가. 열대생물학자의 눈에 그들이 보여주는 정글은 진정한 열대의 정글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법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단언컨대 그건 정글의 법칙이 아니다. 열대의 정글에는 경쟁과 포식뿐 아니라 풍요와 공생의 여유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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