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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54] 여왕 김연아

바람아님 2014. 4. 2. 11:21

(출처-조선일보 2014.02.25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나는 김연아 선수 팬클럽에서 제법 인기 있는 사람이다. 2012년 EBS 강연 시리즈 '공감의 시대, 왜 다윈인가?'에서 제5차 세계빙상연맹 피겨 그랑프리 쇼트 프로그램 결과를 화면에 띄운 채 90도로 절하며 김연아 선수를 가리켜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라고 했더니 "최재천 교수,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그 경기에서 김연아 선수는 76.28이라는 경이로운 점수를 기록했다. 2등과 3등을 한 미국과 헝가리 선수의 점수는 각각 58.80과 58.54였다.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종종 소수점 이하 점수 차이로도 메달의 색이 달라지는 법인데 당시 김연아 선수의 점수는 다른 선수들의 점수에 비해 무려 17점이나 높았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에서 그처럼 압도적으로 세상을 제패한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싸워 거의 언제나 참패했고 아주 가끔 가까스로 이겨 보았다. 그 강의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김연아 선수는 옥상에서 홀로 우아하게 노니는데 세상 모든 떨거지는 지하실에서 헤매고 있다."

그 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위인 목록에 양학선 선수와 이상화 선수를 추가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뚝 섰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리프니츠카야의 등장으로 엉겁결에 얻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을 어쩌지 못한 러시아가 결국 소트니코바를 앞세워 도행역시(
倒行逆施)의 우를 범한 듯싶다. 개막식에서 보여준 '문화강국 러시아'의 이미지는 끝내 메달에 눈이 먼 추잡한 '어제의 제국'으로 전락했다. 한편 분노하는 백성 앞에서 여왕은 '렛잇고(Let it go)'의 의연함을 보여주었다. 밴쿠버의 공주가 소치 겨울왕국에서 드디어 만인의 여왕으로 등극한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저 실력 때문에 그를 존경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를 인품으로도 마음 깊이 존경한다. "김연아 선수, 나는 이 세상천지에서 당신을 가장 존경합니다."


(게시자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