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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40] 쀠뜨와 현상과 하인리히 법칙

바람아님 2014. 2. 6. 11:29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쀠뜨와(Putois)'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저녁 초대를 거절하려 즉흥으로 지어낸 이야기의 주인공 쀠뜨와가 마을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점점 구체적인 실체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이 과정에서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낸 장본인마저도 궁극에는 마치 그가 실존하는 인물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거짓말이란 이처럼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일단 태어나면 자기만의 삶을 산다. 

미확인 비행물체(UFO)는 쀠뜨와 현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목격자들의 민망하리만치 구체적인 진술에 일단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간다.


요즘 들어 부쩍 미래예측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새 천 년을 맞던 지난 세기말보다 더 많아 보인다. 

미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안감이 크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나도 한 미래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최근 '10년 후 세상'이라는 책을 펴냈다. 

미래예측은 정확한 미래 시점을 짚고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껏해야 사기 또는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어느 미래학자가 미래에는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고 하자.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도우미로봇은 많이 등장했어도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잖으냐고 항의해도 그는 

여전히 할 말이 있다. "기다리시라니까요. 언젠가 미래에는…." 그가 말하는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제비가 물을 차면 비가 온다"는 옛말이 있다. 

옛사람들이 비가 오기 전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지면 잠자리들이 낮게 날기 때문에 그들을 잡아먹는 제비가 물을 차듯 

나지막이 나는 걸 보고 한 말이다. 

1931년 미국 해군장교 허버트 하인리히(Herbert Heinrich)는 각종 산업재해 관련 사망사고 이전에는 평균적으로 동일한 

원인으로 인한 부상사고가 29건, 그리고 부상에 이를 뻔한 사고가 300건이나 발생한다는 흥미로운 관찰을 내놓았다. 

미래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미래는 과거의 관성으로 일어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를 뿐이다. 

세상에 떠도는 많은 미래 예측들이 쀠뜨와 현상의 단면인지 하인리히 법칙의 경우인지 잘 살펴야 한다.


(출처-조선일보 2011.12.1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